[뉴스룸에서] 김진철 | 문화부장
‘이슬람 한국 침투 8단계 전략’이라는 게 있었다. 이슬람 세력은 이슬람 인구가 1%가량일 때는 평화를 사랑하는 소수그룹을 지향하며 잠복(1단계)하다가, 이슬람 비율이 점차 늘어 절반을 넘어서면 인종청소와 대학살까지 자행하며, 100%를 이루게 되면(8단계) 신정일치체제를 구현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이슬람 선교사가 1만~2만명에 이르고 이슬람 신자는 30만명 수준으로 급증했고, 한해 동안 한국 여성 2500여명이 한국으로 이주한 이슬람 남성과 결혼한다는 미확인 소문까지 그럴싸하게 붙은 2008~2009년 무렵 이야기다. 여기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 보고서’도 인용됐다. 당시 이슬람 세력의 목표는 2020년까지 한국을 이슬람화하는 것이었다!
나는 2009년 1월 이런 ‘이슬람 괴담’을 기사화하며 요샛말로 ‘팩트 체크’를 했는데, 꽤 오랫동안 항의와 비난을 받아야 했다. ‘뭘 모르는 순진한 기자가 이슬람에게 속고 있다’는 정도부터 “좋으면 당신 딸이나 무슬림한테 시집보내라”는 힐난까지 있었다. 어느덧 2023년마저 저물고 있지만, 난 여전히 이슬람교도가 아니고 주변에서 이슬람교 신자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이슬람 지도자들의 ‘비전 2020’은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 되새기자니 황당하기도 어설프기도 하지만 당시 ‘이슬람 포비아’는 꽤 심각했다. 그때 한국에서 일하던 서른 남짓한 파키스탄 사람 자파르 케말은 “길을 지나는데 아이들이 나를 보고 테러리스트다, 알카에다 지나간다고 떠들 때가 많다. 이럴 때마다 화나고 힘들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하소연했고, 카자흐스탄 출신 한 30대 노동자는 “마치 우리를 범죄자처럼 쳐다보고 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한국말로 들리게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제 ‘가짜뉴스’라는 말이 무척 자연스러워지면서 이런 엉터리 헛소문에 빠져드는 이들이 줄었겠거니 믿고 싶지만, 우리는 더더욱 혼란스러운 지경에 이른 것이 현실이다. 세계적으로 각종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퍼뜨려 특정 사익을 추구하려는 이들이 지난 몇년간 가짜뉴스를 애용해왔지만, 정작 가짜뉴스라는 표현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한 언론 보도를 반복적으로 지칭하면서 익숙한 용어가 됐다. 트럼프가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우기는 한편에서 하마스가 어린아이 수십명을 참수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도는 뉴스로 널리 퍼졌다.
‘가짜뉴스’라는 말은 이제 정치적 수사가 되고 말았다. “가짜뉴스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는 무척 지당하고 매우 시의적절한 말을 윤석열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데, 정작 그가 가리키는 가짜뉴스는 ‘이슬람 한국 침투 8단계 전략’ 같은 게 아니다. 차별과 혐오를 확대재생산하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진짜 가짜뉴스가 아니라, 뉴스타파의 ‘윤석열 수사 무마 의혹’ 보도 같은 일반적인 의혹 검증 보도까지 가짜뉴스로 규정해버린다. 이런 식의 ‘가짜’ 가짜뉴스 규정은 가짜뉴스를 생산·유통하는 전략과 별반 다르지 않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이들이 노리는 것은 특정 집단의 정치적 이익일 뿐이다. 윤 대통령의 가짜뉴스 타령에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박민 한국방송 사장 등은 물론 검경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여주는 바다.
가짜뉴스라는 말은 이제 현상을 드러내는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이대로 가면 진짜 가짜뉴스와 가짜 가짜뉴스를 구분해야 하고, 진짜와 가짜를 또다시 각각의 진짜와 가짜로 분별해야 하는 빠져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에서 헤매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방한한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뉴욕타임스 회장은 “‘가짜뉴스’는 굉장히 음흉한(insidious) 표현”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가짜뉴스’라는 표현은 나치 독일, 스탈린의 소련 등 인류 역사의 끔찍한 순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용어들은 독재자들이 독립적인 언론을 제거하고 나라를 통제하는 데 쓰였다. 취재해보니 최근 들어 세계 50개국 지도자들이 ‘가짜뉴스’라는 말로 언론의 자유 억압을 정당화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가짜뉴스 자체가 아니라 가짜뉴스라는 말이 더욱더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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