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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1개월 1순방’ 외교 대통령? [유레카]

등록 2023-11-19 13:12수정 2023-11-19 18:41

윤석열 대통령 순방. 김재욱 화백
윤석열 대통령 순방. 김재욱 화백

일본 최장수 총리였던 고 아베 신조의 외교 슬로건은 ‘지구본을 내려다보는 외교’였다.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동시에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을 연결하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현재 미국 아시아 정책의 설계도인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과 쿼드(Quad)가 아베의 구상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과 밀착하면서도, 중국 ‘일대일로’에 참여 의사를 밝히고, 러시아·이란 등과도 독자적 외교를 추구하기도 했다. 아베는 2012~2020년 8년 동안 81번의 순방을 했다. 1년에 약 10번꼴,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문 기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 기록을 넘어설 기세다. 지난주 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고 18일 귀국했다. 곧바로 20~25일에는 영국, 프랑스 방문에 나선다. 12월에는 네덜란드를 국빈방문하면서 다른 유럽 국가 방문도 추진한다. 지난해 5월10일 취임 이후 올해 12월까지 19개월 동안 16번의 순방이다. 거의 ‘1개월 1회 순방’ 꼴로 해외를 방문했다. 방문국은 18개국이고 미국(5번) 일본(2번) 영국(2번) 프랑스(2번) 등은 여러 차례 찾아갔다.

올해 잡혀 있던 정상외교 예산 249억원을 훨씬 초과해 예비비 329억원을 더한 578억을 썼는데 대부분이 순방에 들어갔다. 박근혜 정부 때는 연 평균 182억원, 문재인 정부 때 연 평균 163억원이었던 정상외교 예산이 폭등했다. 내년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알려진 ‘호화 순방 예산’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순방 예산을 둘러싼 의문점이 너무 많다고 지적한다. 엄격한 계획과 국회 심사를 거쳐 책정한 예산이 2배 넘게 늘어나는 상황은 유례가 없다. 같은 지역은 묶어서 순방을 해야하는데, 영국·프랑스를 방문하고 돌아와 며칠 안에 네덜란드를 방문하는 식으로 예산을 낭비하는 동선도 매우 이례적이다. ‘무리한 순방’ 일정을 잡았다는 뜻이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국빈방문 초청이 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실이 지시를 내리면 현지공관에서 국빈방문으로 격을 높여서 성사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외교가의 상식이다. ‘선물비’ 등으로 책정된 예산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였는지도 검증되지 않는다. 많은 세금을 써가며 순방 때마다 동행하는 김건희 여사의 일정은 언론 취재도 차단된다. 대통령실이 ‘화보급’ 사진만 제공할 뿐이다.

대통령실은 ‘1년간 지구 2바퀴 반을 돌았다’며 ‘1호 세일즈맨 외교’를 자화자찬한다. 국제적 평가는 딴판이다. 국제통화기금의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는 1.4%로 내렸고, 한국의 수출과 제조업 위기에 대한 경고음이 계속 울린다. 대통령실은 궁색하게도 해외 순방의 무기 수출 성과를 떠들썩하게 홍보한다. 어떤 나라도 정상이 나서 무기 수출을 자랑하지는 않는다는 상식을 무색하게 한다. 전략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순방을 자주 간다고 ‘외교 대통령’일 수는 없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연구개발(R&D) 예산을 16.6%나 깎으면서, 거액의 세금을 들이고 있는 ‘순방 예산 카르텔’도 이제 꼼꼼히 따져야할 때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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