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용산구보건소 관계자들이 빈대 박멸을 위해 소독 작업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똑똑! 한국사회]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출판인
전국이 빈대 공포에 사로잡혔다. 당국에서 방역을 강화했지만 전국 각지에서 신고가 이어지고, 지하철에서 빈대가 기어다니는 모습이 목격되어 사람들이 아예 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말까지 들린다. 21세기에 빈대가 웬 말인가?
알고 보면 우리는 후발주자다.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등 선진국 대도시에서 남미와 아프리카 등 저개발 지역에 이르기까지, 전세계가 빈대로 몸살을 앓은 지 20년쯤 되었다. 지금 프랑스 파리에서는 숙박업소와 영화관, 지하철에서 빈대가 출몰해 내년 올림픽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고대 이집트 기록에도 나오는 빈대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인간을 괴롭혀왔으며,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유기염소 계열 살충제 디디티(DDT)가 널리 사용되면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살충제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경고한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큰 반향을 일으켜 디디티 사용이 금지되면서 다시 나타났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라는 속담이 있듯, 원래 끈질기기도 하려니와, 디디티를 이겨내고 재등장한 빈대는 신경계 돌연변이가 생겨 살충제로 쓰는 신경독소에 노출되어도 죽지 않는다. 이런 살충제 내성은 세계적으로 빈대가 재창궐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다.
해외여행과 국제운송이 급증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싸구려 숙소에 들었다가 온몸을 빈대에 물어뜯긴 이야기는 배낭여행족의 무용담이 된 지 오래인데, 최근 공유숙박의 등장도 한몫했다. 예전에도 민박은 있었지만 지금은 숙박업의 개념이 바뀔 정도로 공유숙박이 보편화하였다. 예컨대 호텔 체인과 임시로 개인 집을 내주는 경우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위험이 클지는 자명하다. 초저가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싼 맛에’ 불필요한 물품을 자주 구매하는 것도 해충 유입 가능성을 높인다.
빈대를 구제(박멸)하기 힘든 이유는 번식력이 왕성한데다, ‘얇기’ 때문이다. 흡혈하지 않은 빈대는 두께가 매우 얇아 종이 서너장 정도에 불과하다. 문틈은 물론 갈라진 벽 사이, 환기관, 심지어 콘센트와 벽 사이 좁은 틈새도 쉽게 통과한다. 살충제로 구제하려 해도 이런 곳으로 들어가 피하거나, 옆집으로 건너가면 그만이다. 대규모 공동주택이 많은 우리나라 특성상 빈대가 한번 자리 잡으면 ‘빈대 청정국’으로 돌아가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책이나 기사를 읽다 보면 빈대가 성별, 인종, 사회적·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심각한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흔히 본다.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 청결과 위생을 유지하기 어려운 계층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피해야 한다는 뜻은 좋지만, 반쪽의 진실이다.
빈대는 어느 집에나 터 잡고 살 수 있지만, 빈곤층과 부유층의 대응 여력은 크게 다르다. 광범위한 살충제에 내성을 갖고 어디에나 숨을 수 있으며 쉽게 도망치는 해충을 근절하려면 전문적인 서비스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이런 서비스는 당연히 비싸다. 외국에서도 빈대에 가장 심하게 시달리는 이들은 대개 빈곤층이며, 그중에서도 빈혈이 생길 정도로 심하게 피를 빨리는 경우는 어린이, 노약자, 만성질환자다. 결국 보편적인 구제책이 필요한데, 빈대 자체는 심각한 전염병을 일으키는 등 공중보건상 위협이 되지 않기에 적극적인 방역에 나서는 나라는 거의 없다. 결국 바퀴벌레처럼 우리와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이 작은 벌레가 일으킨 소동은 21세기 초 인류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전례 없이 연결된 세계에서 살며, 인간과 물자의 빈번한 이동은 항상 예상치 못한 청구서를 내민다. 인위적인 방법으로 지나치게 자연을 지배하려 들면, 자연은 반드시 반격을 가한다. 그 결과는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된 사람에게 훨씬 큰 부담을 안긴다. 빈대조차 우리를 깨우친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함께 사는 법을 배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