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민 |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기후위기 강연을 마치고 나면, 청중들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이렇게 심각한 기후위기 상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고기를 적게 먹고, 전기를 절약하며, 재활용을 열심히 하는 게 정말로 기후위기 해결에 도움이 될까요?”
솔직히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곤란하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다. 애써 노력하고 있는 개인들에게 실상을 전달하는 게 괜스레 미안하기 때문이다. 지면을 빌어 고백하겠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개인들의 이러한 노력은 국가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온실효과를 초래하는 탄소배출 상당 부분이 개인이 아닌 기업의 산업활동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제조업이 발달한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그렇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가 올해 초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 온실가스 배출량의 75% 이상이 대기업들에서 배출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배출량은 전체의 80%를 훌쩍 넘긴다. 환경부가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일반 가정에서 전기플러그 뽑기, 텔레비전 시청 및 컴퓨터 사용 줄이기, 물 절약 등 저탄소 생활 실천으로 줄일 수 있는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국가 배출량의 약 1% 정도라고 한다. 환경부는 개인이나 가정에서의 저탄소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보도자료를 냈겠지만, 필자는 개인들이 아무리 노력해봤자 1% 수준밖에 줄일 수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환경부 보도자료를 곱씹어 보면 문제 해결의 열쇠가 가정이 아니라 기업에 있음이 더욱 명확해진다. 그래서, 필자는 개인의 실천으로 국가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근거 없이 말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런 캠페인은 의도했든 아니든 책임 있는 탄소배출 주체의 책임을 은근슬쩍 희석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기후위기 인식 수준과 해결 의지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이 개인들의 넘쳐나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열망과 에너지가 기업들의 탄소배출을 줄여나가는 데 쓰일 수 있다면 당면한 기후위기 극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탄소를 개인들의 눈에 더 잘 띄게 하는 것이다. 특히 문제의 핵심인 기업이 배출하는 탄소는 더더욱 그러하다. 일단 보여야 문제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집중하다 보면 결국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저탄소 인증’ 제도라는 게 시행되고 있다. 기업이 제품을 생산할 때 탄소 저감 노력을 기울이면 인증마크를 붙여주는 제도이다. 그런데 취지는 좋으나 인증기준이 너무 느슨하여 그린워싱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고, 또 무엇보다 홍보 부족으로 제도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소비자들이 많다.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홍보노력이 필요하다. 사실은 인증마크조차 너무 밋밋해 보였다. 왜 항상 친환경 마크는 눈에 띄지 않는 밋밋한 녹색에 평범한 디자인으로 표시되어야 할까? 친환경, 저탄소 제품들에도 사람들이 혹하는 멋진 디자인의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으면 안되는 걸까? 일단 눈에 띄어야 해결할 수 있다.
지금처럼 탄소배출량이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기업이 생산하는 물건들이 얼마만큼의 탄소 배출을 유발하는지 명확해질수록 미래를 위한 소비자들의 현명한 선택과 소비가 가능해질 것이고, 선택받은 기업들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숨어있는 소비자들이 올바른 선택으로 노력하는 기업들을 칭찬해 줄 수 있도록 제도 보완에 우리 정부가 힘써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