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미국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또 한명의 케네디. 김재욱 화백
‘미국의 왕가’로 불리는 케네디 가문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69)가 최근 대선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다.
첫손 꼽히는 정치 명문가라지만 역사는 길지 않다. ‘대기근’이 아일랜드를 덮친 1849년 미국 이민선에 오른 패트릭 케네디 부부가 첫 장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1세대 케네디는 지독한 가난 속에 요절했고, 그의 ‘아메리칸드림’은 아들(패트릭 조지프 케네디)과 손자(조지프 P. 케네디)를 거쳐서야 실현됐다. 특히 은행·증권·영화·부동산업으로 거부가 된 손자는 초대 미국 증권거래위원장까지 지냈다. 하지만 주가 조작, ‘금주법 시대’(1920~33년) 마피아와 연루된 주류 밀매 등 축재 과정의 흑역사 탓에 정치적 야망의 실현을 다음 대로 미뤄야 했다.
기대에 부응한 건 4세대인 존 F. 케네디였다. 1961년 1월, 43살 최연소로 제3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뉴 프런티어’의 기수를 자처했던 그의 집권은 겨우 1천여일 만에 끝났다. 하지만 비극적인 죽음의 서사로 인해 향수와 신화의 주인공이 됐고, 미국 민주당의 아이콘으로 남았다. 지난해 9월 미국 시비에스(CBS)가 매긴 ‘역대 대통령 순위’에서 전체 45명 중 9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진보적인 이미지와 달리, 불법적인 비밀공작에 집요하게 매달렸다.(팀 와이너 ‘잿더미의 유산’) 친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부 장관에게 중앙정보국(CIA)을 동원한 ‘더러운 전쟁’의 전권을 맡겼다. 응오딘지엠 남베트남 대통령 납치·살해를 비롯해 이들 형제가 집권 2년10개월간 감행한 작전만 무려 163회에 이른다. 군인 출신 아이젠하워가 8년 임기를 통틀어 170회를 승인한 전례와는 비교가 안 된다. “목표가 좌익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기만 하다면, 어떤 군사행동이든 환영한다.”(존 F. 케네디)
중앙정보국을 시켜 뉴욕타임스 기자 도·감청 등 법에 엄격히 금지된 내국인 사찰도 서슴없이 저질렀다. ‘쿠바 미사일 위기’ 해소는 소련의 턱밑인 터키(튀르키예)에서 미국 미사일도 동시 철수하는 쌍방 거래였음에도 소련의 협조를 얻어 국가기밀로 봉인했다. 그러고는 용기와 결단으로 핵전쟁을 막은 인류의 구원자인 양 자신을 포장했다.
다음달 22일은 그가 1963년 댈러스에서 피격·암살당한 지 60년이 되는 날이다.
강희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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