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의 질문
“기성세대, 특히 그들의 딸보다는 아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을 교육해야 한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클로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9일(현지시각) 하버드대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성세대와 남성·기업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골딘 교수는 여성 노동시장 변화와 성별 임금격차 등을 연구해온 노동경제학자다.
그는 책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서 결혼, 출산, 양육 등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을 성별 임금격차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런 경력단절은 가사·돌봄노동의 일차적인 책임자를 여성으로 여기는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골딘 교수가 기자회견에서 말한 인식 변화는 결국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성평등 의식 확산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합계출산율 0.78명(지난해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021년 기준 1.58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은 여전히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1 양성평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가사·돌봄은 ‘전적으로 또는 주로 아내가 부담한다’는 응답이 68.9%로 가장 높았다. 맞벌이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응답자의 60% 이상이 ‘전적으로 또는 주로 아내가 가사와 돌봄을 한다’고 답했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깨지지 않는 철벽과도 같다. 한국은 1996년 오이시디 가입 이래 27년째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2021년 기준 남녀 임금격차는 31%로, 오이시디 평균(12%)의 두배를 웃돈다. 유리천장지수(고등교육, 노동참여율, 성별 임금격차 등 열가지 지표를 종합한 지수)는 11년째 꼴찌다.
이처럼 사회 전반에 구조적 성차별이 공고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를 계속 외면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저출생 대책(‘저출산·고령사회 정책 과제 및 추진 방안’)만 해도 ‘성평등’ 용어는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역대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1∼4차)에 걸쳐 (양)성평등한 가족·사회문화 확산(1차), 범국민적 (양)성평등 인식 및 문화 확산(2차), 성평등 교육 강화(3차), 성평등하고 공정한 사회(4차)가 정책 추진 방향으로 제시된 것과 대조적이다.
여가부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구성원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양성평등 조직문화 조성’ 사업의 내년도 예산(4억1천만원)을 올해(7억1천만원)보다 42.3% 삭감했다. 또 생활 속 성별 인식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양성평등 및 여성 사회참여 확대 공모사업’과, 초·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해온 ‘성 인권 교육’을 내년에 폐지하기로 했다.
‘성 인권 교육’ 중에는 어떤 일을 배분하거나 판단하는 데 ‘여성이니까’ ‘남성이니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성역할 고정관념이고 이는 차별의 원인이 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현 정부는 ‘아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육 기회마저 축소한 것이다. 성평등 역행은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헌법적 가치’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오세진 젠더팀 기자 5sjin@hani.co.kr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경제학부 교수가 기자회견에서 말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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