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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태원 참사 1주기…길 잃은 별들이 내는 길을 따라

등록 2023-10-20 09:00수정 2023-10-20 10:03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의현씨의 어머니인 김호경씨(맨 오른쪽)가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참사 1주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의현씨의 어머니인 김호경씨(맨 오른쪽)가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참사 1주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기고] 장헌권ㅣ목사·광주기독교회협의회 인권위원장

2022년 10월29일 일어난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멀쩡하게 길 가던 시민 159명이 숨졌다. 참사가 일어나기 3~4시간 전부터 시민들은 외쳤다. “압사.” “쓰러졌다.” “큰일 날 것 같다.” “대형사고 직전.” “죽을 것 같다.”

세월호 참사 때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대한 저항이다. 알리고 신고했다. 하지만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국가 부재였다. 사고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책임을 철저하게 부인하고 회피했다. ‘참사’는 ‘사고’로, ‘희생자’는 ‘사망자’로 부르기로 했고, 리본에서 ‘근조’를 뗐다.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고, 비통한 유가족들은 외면당했다. 지금까지도 참사를 축소 은폐하고, 지우기에 골몰하고 있다.

정부의 외면과 탄압, 그럴수록 깊어지는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는 시민사회단체와 연대의 걸음으로 이어졌다. 애도할 공간도 머물 장소도 거리밖에 없다는 사실이 한없이 억울한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제대로 된 희생자 추모와 사고 재발 방지를 하려면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외면당했다. 우리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한 유가족과 함께하는 릴레이 걷기를 시작했다. 광주에서 시작된 기억하고 연대하는 발걸음이다. 2023년 6월22일 기자회견과 함께 광주 서구에서 걷기 시작해, 매주 토요일 광산구, 북구 그리고 남구, 동구를 걸었다. 빛고을 동서남북을 걸었다. 지난 세월호 참사 때 광주 시민상주가 안전한 사회를 위한 1000일 걷기를 했듯이 말이다. 이제 1주기 하루 전인 오는 28일 열아홉번째 마지막 발걸음을 앞두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이태원 참사도 ‘왜?’란 질문이 떠나지 않는다. 왜 사전에 대비하지 않았나? 왜 출동한 경찰은 적극적이지 못했나? 왜 치안종합상황실은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나? 왜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나? 도대체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희생자 159명은 여전히 묻고 있다.

유가족들은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하라” “10·29 이태원 참사 그날의 진실을 밝히겠습니다”라는 글귀를 손에 들거나 몸에 걸친 채 걷고 또 걸었다. 수녀님, 어린이도 함께했다. 여름 폭우와 폭염에도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추석 연휴 때 어느 희생자 엄마는 출발해서 도착할 때까지 통곡을 멈추지 않아 광주가 눈물바다가 되었다. 유가족의 피눈물이다. 가슴을 도려내는 십자가 길이다.

릴레이 걷기 하는 동안 희생된 딸(연희) 생일을 맞아, 그리운 딸을 떠올리며 가곡 ‘그리움’을 들려주는 아빠가 있었다. “기약 없이 떠나가신 그대를 그리며 먼 산 위에 흰 구름만 말없이 바라본다. 아 돌아오라, 아 못 오시나.” 그리움에 사무쳐 이 노래를 함께 듣고 싶었다고 한다.

유가족들의 손편지도 추억과 회한의 눈물로 젖었다. “내 목숨 다하는 날까지 진실을 꼭 밝혀내고 우리 큰딸 명예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오지연 아빠) “아빠는 요즘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단다. 눈을 감으면 혹시 네가 와서 갈까 봐 또 한편으로 억울하고 미안해서 쉽게 잘 수가 없단다. 가슴이 답답하고 혼자 있으면 자꾸 눈물이 난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많단다. 보고 싶은 해린아.”(이해린 아빠) “이 세상과 바꿀 수 없는 우리 연희 너무나 허망하게 하늘나라로 보내서, 너무나 가슴 아프다. 아빠가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김연희 아빠) “며칠 전 유가족 간담회 참석하러 서울 갔다가 광주에 내려오면서 기차를 타는데 아들 생각이 너무 많이 나 혼자 울었단다. 재강아 재강아 아무리 불러봐도 아빠 엄마의 가슴은 먹먹하기만 하다.”(김재강 아빠)

조용한 성격인 박지애 아빠는 손편지 대신 그동안 딸과 카카오톡으로 나눈 내용을 보여줬다. 아빠는 꼼꼼하고 애틋하게 딸을 챙기고, 딸은 그런 아빠를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하며 온갖 소소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변호사 아들을 잃은 차현욱 아버지는 불편한 몸으로 고통을 침묵으로 삭여가며 함께 걸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애도의 마음으로 진실과 정의의 길에 동행했던 열여덟번의 발걸음은 절박했다. 추모와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하고자 길 잃은 별들이 내는 길을 따라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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