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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동북아시아 평화 일굴 학생교류를 꿈꾸며

등록 2023-10-18 19:06수정 2023-10-19 02:42

덴마크 대안교육협회 주최 에라스뮈스+ 회의 교사 모둠토의 모습. 이병곤 제공
덴마크 대안교육협회 주최 에라스뮈스+ 회의 교사 모둠토의 모습. 이병곤 제공

[세상읽기]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

“학생들 나이는 몇살이죠?” “지난해에는 어떤 나라들과 교류 프로그램을 가졌을까요?” “방문 시기는 어느 달이 제일 좋아요?”

지난 9일 오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 중심에 자리한 덴마크대사관 2층 작은 강당. 덴마크를 비롯해 프랑스, 루마니아, 이탈리아, 체코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온 교사들이 몇개의 모둠으로 나뉘어 학생 교류에 관한 조건을 타진하느라 행사장 안이 떠들썩했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이도록 한 힘은 유럽연합(EU)의 ‘에라스뮈스+(플러스)’ 지원 사업이다. 16세기 초 소설(풍자문) ‘우신예찬’의 저자로 이름난 중세 인문학자 에라스뮈스에게서 그 명칭이 비롯됐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신이었던 그가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에서 배우고 일했기 때문이리라. 37년 역사를 가진 에라스뮈스+는 유럽연합 시민들에게 교육, 스포츠 분야 활동을 촉진하는 통합 기금 지원 사업이다.

유럽연합의 에라스뮈스+ 관련 누리집에는 놀라운 통계가 담겨 있다. 2021년 한 해만 4조2천억원을 지원했다. 핵심 지원 조건은 교육을 중심으로 한 ‘민간인들 사이의 교류’다. 이 돈을 받은 조직이나 기관만 해도 무려 7만1천 곳. 여기에 64만9천여명이 참여했는데, 대부분 학생이나 교수 요원들이 혜택을 보았다.

프랑스 파리 피에르 망데스 중등학교 논의 모습. 이병곤 제공
프랑스 파리 피에르 망데스 중등학교 논의 모습. 이병곤 제공

이틀 뒤. 파리 20구 지역에 있는 피에르 망데스 중등학교에 들렀다. 사회·경제 지표가 어려운 지역 한가운데 놓인 학교에 11~14살 중학생 500명이 다닌다. 외국 손님을 맞아 프랑스 억양이 잔뜩 섞인 어눌한 영어로 학교 소개와 에라스뮈스+ 참여 소감을 밝히는 학생들의 모습이 기특하기만 하다. 이 학교는 2022년에 유럽연합으로부터 에라스뮈스+ 기금 4300만원을 받아 사용했다. 그 정도 금액이면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청소년 100명이 기차로 오갈 수 있다. 5년 동안 이 기금을 받는다면 해마다 100명씩 나눠서 유럽의 특정한 나라에 전교생을 교류학생으로 보낼 수 있다. 이 학교 학생들 부모의 경제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 이 사업은 더욱 의미 있는 일이다.

머릿속에 동북아시아 지도가 절로 떠올랐다. 두달 전 우리 학교 교육위원회 학부모들이 김누리 중앙대 교수를 강연자로 초청했는데, 그분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일본의 과거, 한국의 현재, 중국의 미래가 동북아시아의 긴장 해소와 평화적 교류를 방해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전쟁범죄로 얼룩진 과거사 청산을 거부하는 일본, 남북 분단 문제를 75년째 해결하지 못한 채 더 멀어져가고 있는 남과 북, 경제성장에 걸맞은 정치적 투명성 확보를 외면하는 중국. 세 나라가 처한 사정이 진정한 의미의 교류와 소통을 막고 있다는 통찰이었다. 맞는 말이다. 비전을 공유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앙금이 남아 있는 인접 국가 국민 사이의 어정쩡한 왕래는 쇼핑, 성형, 관광 자원의 소비 정도에 국한될 뿐이다. 깊은 이야기 나누기가 서로 겸연쩍으니 더 그렇다.

유럽연합은 돈이 남아돌아서 막대한 교류 비용을 지출하는 걸까? 그들이 학생과 교수 요원들의 국가 간 왕래를 촉진하려는 최우선 목적은 분명하다. 2차 세계대전 같은 비극을 유럽에서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다. 서로 교류하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는 전쟁을 벌이기 쉽지 않다. 1972년 동독과 서독이 기본조약을 맺은 뒤 양쪽을 오갔던 시민들 수는 해마다 600만명에 이르렀다. 독일 통일의 바탕이 여기서 생겼다. 미사일과 첨단 전자무기를 생산 개발하는 비용을 떠올려보라. 사람 사이 교류를 지원하는 편이 훨씬 더 안전하고 돈이 덜 든다. 이 관점에서 보면 비무장지대(DMZ)를 사이에 두고 민간인 사이의 왕래가 거의 없이 ‘4분의 3세기’를 지내온 남북한 사이만큼 위험한 관계는 없는 셈이다.

덴마크대사관에서 모둠회의를 할 때 한국에 관심을 보이던 여러 나라 교사들이 먼 이동 거리와 비용 문제, 에라스뮈스+ 사업 적용의 어려움 등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가까운 북한, 중국 베이징이나 연변(옌볜), 일본 히로시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다 놔두고 나는 왜 그 자리에서 그 난처함을 잠시 겪었을까. 유럽 중심주의 사고일까. 그보다는 이미 내 의식 속에 분단 상황이 깊게 똬리 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물줄기를 휴전선 가까운 곳으로 돌려놓는 일에서부터 평화를 지향하는 교류가 시작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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