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균ㅣ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고속도로 교통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 차량 내부에 인공지능 카메라를 장착하는 것이다. 미리 얘기하자면,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지금도 소비자들이 사회적으로 동의한다면 충분히 도입이 가능한 기술이다.
작동 방식은 대략 이렇다. 차 안에 설치된 카메라가 운전자의 얼굴을 찍는다. 운전자가 제한속도를 넘어서 시속 150㎞로 달린다고 가정하자. 카메라는 운전자의 얼굴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해서 감정 상태를 판단한다. 예를 들어, 운전자의 감정이 공포라고 판단했다면, 운전자는 아마도 몸이 매우 아프거나 다른 위급 상황일 수 있다. 불안의 감정이라면 개인적인 약속에 늦거나 무언가 조바심이 나는 상황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운전자의 감정이 분노라면, 이는 보복운전을 하려는 상태이거나, 누군가와 다투려고 가는 상황일 수 있다.
여기서 자동차가 운전에 개입한다고 가정하자. 공포, 불안이라면 자동차는 운전자가 과속하는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노 상태라면 자동차가 개입해서 속도를 80㎞ 정도로 낮춘다는 접근이다. 사고 예방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이쯤에서 독자에게 묻고 싶다. 만약, 자동차 제조사가 이런 차량을 만들고, 행정기관에서 이런 차량의 보급을 추진한다면, 여러분은 소비자, 국민으로서 찬성, 반대 중에서 어떤 의견을 내겠는가?
필자는 이 상황을 놓고 올해 들어 수천명의 판단을 들어봤다. 수십, 수백명이 모이는 컨설팅, 강연 자리 등에서 그리해 봤다. 결과는 대략 반반으로 나왔다. 찬성, 반대의 비율이 비슷했다. 먼저, 찬성하는 분들의 의견은 명확했다. 사고를 예방해서 타인과 나의 생명을 지키는 데 확실하게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를 내보였다. 실제로 보복운전을 당했던 분은 이런 차량의 도입에 강력한 지지 의사를 보였다.
그렇다면, 반대하는 분들의 의견은 무엇일까? 두려움과 불편함을 내비쳤다. 당장은 사고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서 결과에 책임지는 상황이 아니라, 판단, 행동, 책임 모두를 기계에 떠넘기는 상황이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리라 우려했다. 좀 더 나아가자면 수많은 공상과학 영화에서 등장하는 디스토피아 세계를 향하는 첫걸음이 아니겠냐는 의견이었다. 이렇게 자동차 하나에서 시작한 책임 전가가 복잡한 사회 시스템, 전쟁 무기 등 운영을 전가하는 쪽으로 진화할 것을 걱정했다. 어느 한쪽의 판단이 더 타당하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자동차가 조만간 또는 미래에 등장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필자도 알 수 없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기술만 놓고 보면 당장에라도 도입이 그리 어렵지 않다. 현대 인류는 각종 첨단기술을 등 떠밀리듯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 필자는 이 부분이 조심스럽다. 만약, 이런 자동차가 갑자기 등장할 경우, 첨단기술을 장착한 자동차이니 기술을 잘 모르는 나는 그저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하면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다. 무서운 속도로 쏟아지는 놀라운 기술들을 우리가 이미 그렇게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은 인류를 위해 존재한다. 인류가 기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어떤 기술이 다가오건, 우리가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 당장의 편익을 넘어서 장기적으로 인류의 삶과 문명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