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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고 김주익 20주기…노란봉투법은 평화다

등록 2023-10-11 18:49수정 2023-10-12 02:42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지난달 20일 오후 국회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본회의 통과 촉구 및 거부권 저지’ 투쟁문화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지난달 20일 오후 국회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본회의 통과 촉구 및 거부권 저지’ 투쟁문화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룸에서] 전종휘 | 사회정책부장

20년 전 김주익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크나큰 슬픔이었다. 그가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지 129일 되던 2003년 10월 어느 날 얘기다. 김주익(당시 41)은 35m 높이 농성장에서 자결한 채 발견됐다. 사랑하는 자식 삼남매한테 당시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바퀴 달린 운동화 힐리스를 사주겠다고 했다던 약속을 더는 지키지 못하게 돼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그 애절하고 애끊는 글을 접한 많은 이의 가슴은 다시 한번 무너져 내렸다.

당시 이 얘기를 새벽시간 문화방송(MBC)의 지상파 에프엠(FM)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정은임 아나운서(2004년 사망)가 차분하게 전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정 아나운서는 김주익의 지갑에 남은 돈이 13만5080원이라며 노동운동의 귀족화 경향을 비판한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비꼬아 “대한민국의 노동귀족들이 사는 모습”이라고 묘사했다. 가슴 아픈 얘기다.

21년차 조선소 노동자이던 김주익의 기본급은 105만원, 세금 등을 공제하면 80만원 남짓 받는 그와 그가 속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노조원 110여명한테 회사가 건 18억여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뒤이은 가압류는 삶의 희망을 앗아가는 것이었다. 수백억원 흑자를 내는 회사의 대규모 정리해고 추진과 임금동결에 맞서 벌인 파업과 쟁의행위가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게 배상청구 이유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18억원은 110명이 똑같이 나눠 내든 누구 혼자 다 뒤집어쓰든 해야 한다. 이를 어려운 법률용어로 부진정 연대 책임이라고 한다. 깃털만큼 쟁의했든 공장 기물을 부수는 등 격렬하게 행동했든 그 책임은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이던 김주익이 느꼈을 마음의 짐이 가늠된다.

김주익은 유서에 “우리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에 고소·고발로 구속에 해고까지 노동조합을 식물노조로, 노동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을 이 투쟁을 통해서 바꿔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고 적었다. 결국 그는 모두가 벼랑 아래로 떨어지기 전에 먼저 홀로 외로이 그 높은 곳에서 생의 끝자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김주익이 그렇게 가고 9년이 흐른 뒤인 2012년 12월엔 김주익과 같은 한진중공업 노조의 최강서가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고통을 호소하며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이 바뀌지 않은 탓에, 노동자들은 계속 내몰려야 했다. 회사가 그와 노조원들이 물어내야 한다며 법원에 청구한 돈은 158억원에 달했다.

그 뒤로도 회사의 부당한 노동 탄압과 교섭 거부, 단체협약 파기, 정리해고는 물론 노조법상 교섭 한번 하자고 싸우다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의 을이 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가 하나둘이 아니다. 국가권력의 무자비한 진압 속에 정리해고당한 옛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비롯해 가까이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과 화물연대 소속으로 하이트진로 제품을 나르던 특수고용 노동자들까지 이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노동자 대상 손해배상 소송이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상황에서 소송을 걸 때 누가 얼마만큼 손해를 끼쳤는지 구체적으로 나눠 그만큼의 책임을 물으라는 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다.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하고 결정하는 원청회사에 교섭의 의무를 지움으로써 이들 노동자가 더는 ‘진짜 사장’을 찾아 공장이나 길거리에서 투쟁하지 말고, 새벽에 크레인이나 철탑, 굴뚝에 오르지 말고 대화 테이블에 사용자와 마주 앉아 말로 해결하라는 내용도 이 법의 알짬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노동자들이 만만한 사용자들을 찾아가 교섭하자고 떼쓰는 일이 늘어 산업현장의 평화가 깨질 것이라고 사용자단체들은 주장한다. 물론 일시적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일정 기간 조정의 시기를 거치며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결정례와 판례가 쌓이는 과정에서 분쟁은 줄어들 것이다. 노동력을 가져다 쓴 이가 그에 따르는 부담도 지는 게 맞다. 수익자 부담 원칙은 민주주의 사회의 일반 원리다.

오는 17일은 김주익 20주기다. 본회의 통과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이제 국회가 나서야 할 시간이다.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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