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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추석 밥상에 오른 ‘민주주의’

등록 2023-10-03 18:44수정 2023-10-04 02:38

서울중앙지법이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 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27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서울중앙지법이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 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27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전국 프리즘] 김기성 | 수도권데스크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중략)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엄혹했던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인 1983년 가수 정수라가 목이 터지라 불렀던 노래 ‘아! 대한민국’(박건호 작사, 김재일 작곡)의 일부 가사입니다. 군홧발에 민주주의가 짓밟혔지만,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선 이 노래가 날마다 나오다시피 했고 이 땅을 밟고 사는 국민은 너도나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기 일쑤였습니다. 당시 시민 상당수는 정권의 입맛에 맞춘 ‘관제가요’라고 비판하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정말 이런 나라가 됐으면…’이라는 기대감으로 콧노래로라도 흥얼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꼭 40년이 지난 올해 추석,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습니다. ‘아! 대한민국’이란 노랫말처럼 고향 하늘에도 “조각구름이 떠 있었고,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도 펼쳐져 있었습니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벌판에는 황금 물결이 일렁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달려간 고향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추석 밥상에는 ‘꿈꾸던 풍요로움도, 희망했던 자유로움도, 은혜롭게 노래를 부를 강산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팍팍하기만 한 경제 상황과 가벼워진 지갑 얘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여야를 막론한 각종 부정·비리와 특혜 의혹들, 그리고 한탄과 푸념만 흘러나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기·승·전…이재명’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와 체포동의안 상정이 민주적인 것이냐’, ‘가결된 것은 민주당 내 반민주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된 것이 바로 민주적인 것 아니냐’ 등등 온통 ‘민주와 반민주’로 추석 밥상은 들썩였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 대학을 다녔던 친구들이기에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후퇴하고 있는지가 최고의 ‘반찬’이었습니다. 어느새 희끗희끗해진 머리를 흔들던 한 친구는 “자식과 노후를 걱정해야 할 이 나이에 우리가 왜 또 민주주의를 걱정해야 하는 거지?”라는 푸념 섞인 반문도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어떻게 잘 마무리 짓고 행복한 노후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던 반백의 친구들 모두 이제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걱정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긴 연휴 동안 ‘민주주의’가 뭔지, 왜 유독 윤석열 정권이 본격 행보를 시작한 2023년 추석에 민주주의란 단어가 이렇게 많이 오르내리는지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대화와 타협, 만남은 사라지고 대립만 살려내 으르렁대는 정치, 이미 유령이 돼버린 공산주의를 끌고 들어와 주권자를 갈라치고 이념대결로 몰아가는 권력자들의 행태가 바로 민주주의를 자꾸만 밥상에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시사평론가인 유시민 작가는 제이티비시(JTBC) 한 시사교양프로그램에 출연해 최근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생각을 쏟아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또 배워온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공유해보고 싶습니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아픔과 어려움을 당하는 고통을 해결해주길 바라는 시민들이 많은 사회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민중의 선택으로 치러지는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는 늘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고, 자기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고 의무를 충실히 다하겠다는 주권자로서의 의지를 가진 시민들이 많은 사회여야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도 피력했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올 추석 밥상에서 ‘민주주의 반찬’ 많이 드셨는지 궁금해집니다.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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