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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뉴노멀-혁신] 어느 머스크빠의 태세전환

등록 2023-09-24 18:24수정 2023-09-25 02:35

‘일론 머스크’(월터 아이작슨 지음) 표지.
‘일론 머스크’(월터 아이작슨 지음) 표지.

김진화 | 연쇄창업가

불티나게 팔린단다. 지난주 나온 일론 머스크 전기 말이다. 세계 최고 부자라는 타이틀에 공상과학영화 같은 사업영역, 서슴없이 내뱉는 공적 발언까지 그야말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인물이니 안 팔리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혼외자에 ‘사내’ 정자기증을 통한 출산까지 10명에 이르는 자녀들이며 공공연한 대마초 흡연, 구글 창업자 아내와의 불륜 스캔들 등 사적인 기행까지 곁들여지면 그야말로 역대급 ‘어그로꾼’이 아닐 수 없다.

당대 최고 전기작가로 꼽히는 월터 아이작슨의 전작은 ‘스티브 잡스’였다. 지구적인 차원에서 동시대인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21세기 기업가상의 효시라 할 수 있다. 그런 잡스를 흔히들 ‘작가주의(auteurism) 기업가’라고 한다면, 머스크는 행동주의 기업가 정도로 규정될 수 있지 않을까. 말끝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웅변하면서 정작 자신도, 조직도 바꾸지 못하는 무늬만 혁신가들과 달리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목표를 향해 돌진하기로 악명이 높다. ‘워라밸’ 같은 건 안중에도 없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혹사해가며 작업 현장을 전투화하는 방식은 개발독재 시절 일터마저 연상시킨다.

공들인 한 방을 터뜨릴 때까지 비밀주의를 고수하며 치밀했던 잡스와 달리 호언장담으로 세상의 기대를 부풀린 뒤 기어이 수습해가는 모양새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종종 손가락질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곤 했고, 공매도 세력의 만만한 먹잇감으로 쏠쏠했던 것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필자는 테슬라와 머스크를 응원하는 소수의 대열에 서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뽐뿌질’했던 도지코인을 따라 살 정도로 맹목적이진 않았지만, 좌충우돌하면서도 방향성을 잃지 않고 기반을 다져가는 뚝심에 주저 없이 박수를 보내는 입장이었다.

예컨대 이 지면에서도 2년 전 위성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의 가능성에 주목했으며, 두 달 전에는 테슬라를 단순히 자동차 회사로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차전지 광풍에 맞서 다시 한번 상기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맹위를 떨치며 전세를 좌우할 정도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달 발간돼 화제가 된 모건 스탠리 보고서는 테슬라의 슈퍼컴퓨터 도조가 자율주행을 넘어서 다른 산업에까지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강조했다. 데이터에 기반한 자동학습을 통해 기계 스스로 코딩하는 소프트웨어 2.0 방법론이나, 챗지피티 거대언어모델에 필적하는 자율주행을 위한 기반(foundation) 모델 등은 인공지능 기술경쟁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니 더는 한갓지게 응원만 할 수 없게 되었다. 한 개인에게 인류의 미래가 달린 의사결정 권한이 너무 많이 집중되고 있어서다. 우크라이나 전황에 대한 자의적 판단으로 스타링크 접속을 일방적으로 차단한 게 단적인 예다. 핵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차단했다고 해명했지만, 미국 국방부와의 이용료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제스처라 보는 의혹 또한 팽배해 있다. 우주개발로 넘어가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그야말로 무주공산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에서 출범하면서 빅테크 기업들의 플랫폼 장악을 우려하는 여론을 반영해, 아마존 독점을 연구한 30대 리나 칸이 연방거래위원장으로 발탁되는 파격적 인사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파격마저도 금세 퇴색될 정도로 기술 발전 속도가 엄청나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찰처럼, “인류는 이제 (신을 대신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왔는데, 그 기술을 이용할 권한이 몇몇 개인에게 집중되는 상황은 어찌할 것인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앞에도 놓인 숙제다. 정부가 나서서 양대 항공사 합병을 주선했다가 그게 미국과 유럽에서 줄줄이 제지당하는 촌극이 빚어지는 걸 보면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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