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틱]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
프랑스 한 자동차 제조사가 차 색상에 따라 세차하는 빈도가 다른지 설문조사했다. 예상대로 검은색 차 소유자들이 다른 색보다 세차를 자주 하는 거로 나타났는데 빈도가 두배가 넘을 정도였다. 고급승용차의 검정 편애는 유명하다. 이런 현상은 특히 권위주의와 사회적 불안감이 높은 나라에서 두드러지는데, 최고는 아니지만 이런 현상은 한국도 뒤지지 않는다. 대기업 고위 임원 승용차는 하나같이 검은색이다. 그리고 그 검정 승용차는 약속이나 한 듯 반짝거리게 잘 닦여 있다. 성공과 권위의 상징 검정색과 광택. 그 상징을 유지하기 위해서 차주는 남들보다 두배는 자주 세차한다. 그런데 검은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원래 부지런해서 세차를 자주 할까. 아니면 남들 좋다니 선택한 색이 사람을 자주 세차하도록 내모는 걸까.
광택은 일종의 광학 현상이다. 표면이 빛을 잘 반사할수록 광택은 강해진다. 유리나 거울이 대표적인 반사체고 니스나 에나멜 같은 도장 처리로도 광택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언뜻 생각해봐도 비싸고 고급이라 부르는 것들에는 항상 광택이 있다. 고급 호텔 로비 바닥은 수입 대리석으로 깔려 있고 사람의 품과 화학약품으로 반짝거림을 유지한다. 성공의 상징 검은색 승용차는 먼지 하나 없이 반짝거리지 않으면 다른 색보다 더 더러워 보인다. 광택은 구현하기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것은 더 까다롭고 그래서 별도의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니, 남들과 차별화하려는 인간의 속성과 통하는 면이 있나 보다.
과시를 위한 사치품만큼이나 일상생활에서 광택은 주로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실용적인 이유로도 많이 사용된다. 식탁 위에 올려진 유리가 대표적이다. 매일 국물이나 음식 찌꺼기가 떨어지는 곳이니 유리처럼 매끈거리는 표면이면 닦아내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숨겨진 함정이 있다. 하루 이틀만 안 닦아도 내려앉은 약간의 먼지가 금방 눈에 띄니 어쩔 수 없이 자꾸 걸레질을 부른다. 또한 작은 손자국 또한 선명하게 드러나니 식사 때 아니면 식탁에 앉아 뭘 하기도 부담스럽다. 더러움을 방지하려는 광택 재료가 사람을 더 피곤하게 만들고, 편하게 앉는 것도 방해한다.
집은 편한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편안함은 살 사람의 까다로운 취향을 만족시킬 정도로 깔끔하고 반짝거려서가 아니라, 유지를 위해 ‘까탈’을 부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현명하게 가꿔졌을 때 진짜 편안함이 된다. 집 설계를 의뢰한 이들에게 실내 마감 재료나 가구 등도 웬만하면 광택이 없거나 적은 쪽으로 권하는 숨은 이유다. 조삼모사처럼 들릴지 몰라도 실제로 먼지가 눈에 덜 보이면 주인의 ‘신경쇠약’도 줄어든다. 디자이너가 행복하면 그곳에 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힘들어진다.
십여년 전 한 친구가 형제들과 돈을 모아, 팔순 생일을 맞은 어머니를 위해 평생 소원하시던 고급 자개장을 선물한 적이 있다. 유명한 나전칠기 장인이 정성을 다해 새겨 넣은 ‘십장생도’가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호화스러운 8쪽짜리 장롱이었다. 평생 꿈꾸던 자개장을 마주한 어머니는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 알 수 없는 한숨을 쉬는 것을 당시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그분의 부고와 함께 그간 소식을 전해주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분의 내쉬던 한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 틈만 나면 그 장롱을 닦고 있었단다. 그 반짝이던 자개장은 그분에게 정말 행복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