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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녹색전환과 기후정의 이끄는 ‘길항권력’

등록 2023-09-19 18:43수정 2023-09-20 09:05

​기후위기비상행동과 기후정의동맹,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환경시민단체와 노동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4월10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후위기 역행하는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폐기하고 재수립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기후위기비상행동과 기후정의동맹,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환경시민단체와 노동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4월10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후위기 역행하는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폐기하고 재수립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세상읽기] 김양희 |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지난 2월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가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닝더스다이(CATL)와 손잡고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우회하려던 계획은, 미 정부가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가려져 있던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기업을 소환했다. 미-중 전략경쟁이 엄중해도 기업이란 이윤 추구 동기에 따라 정부에 각을 세울 수도 있는 핵심 이해당사자임을 각인시켰다. 이에 더해 최근 또 다른 중요한 이해관계자가 부각되고 있다. 인권, 생태,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를 내걸고 정부나 기업을 압박하는 지역사회, 원주민, 생태주의자 등이다. 이들 ‘제3의 행위자’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 이들은 전기차가 친환경차라는 통념에 반해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쓰이는 핵심광물 생산 과정이 반환경적이고 반인권적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들춰낸다. 리튬이온배터리의 핵심원자재 리튬은 염호나 경암에서 추출된다. 애초 수자원이 부족한 지형에서만 형성된 염호에서 리튬 1톤을 생산하려면 약 200만리터의 물을 써야 하며 이후 공정에서 황산과 같은 독성물질이 투입되는 까닭에 인근 수자원 고갈, 생태계 파괴, 지역주민의 생계 위협 등으로 이어진다. 경암에서 리튬을 추출할 때는 더 많은 물을 쓴다. 양극재 원료 코발트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79%를 생산하나, 이 중 약 25%가 변변한 안전장치도 없이 채굴되고 있어 광산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며 아동노동 착취 문제도 고질적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코발트의 대안으로 각광받는 니켈의 최대 산지 인도네시아도 환경 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다.

둘째, 이들은 핵심광물의 탈중국이란 구호 아래 그간 불편한 진실을 외면해온 서방의 위선도 고발한다. 그동안 비윤리적 핵심광물 채굴과 정·제련을 독점해온 중국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나 실은 서방 정부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최대 리튬 생산국 오스트레일리아의 리오틴토와 같은 서방 채굴업체들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 프랑스, 독일 등은 이제야 윤리적 핵심광물 생산을 위한 규제 강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면서도 인플레이션 감축법, 핵심원자재법,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 등을 통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니 자국 내 규제는 완화하는 모순에 빠졌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에 ‘제3 행위자’들은 지금까지의 방식이 수질과 토양 오염, 삼림 파괴, 생물다양성 감소, 지역민 생계 위협 등을 초래하고 녹색전환에 역행한다며 반기를 들고 나섰다. 이러한 흐름은 프랑스의 2대 리튬 매장지 트레게네크에서 포르투갈, 독일, 스웨덴,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미국 네바다주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최근 미국 네바다주와 오리건주 접경지역에서 세계 최대 리튬 점토암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나 그 이전부터 비윤리적 리튬 채굴의 희생양이 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일본 닛케이신문과 규슈대학이 미국산 전기차의 공급망에서 환경과 인권 관련 28개 항목을 조사한 결과, 16개 항목이 2022년보다 2030년에 악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대체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4% 감소하나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황과 미세먼지는 각각 17%, 2% 더 발생했다. 인권 관련 10개 지표 중 산업재해·사망사고, 아동노동 착취, 저임노동이 각각 12%, 7%, 4% 느는 등 7개 항목이 악화한다. 이즈음에서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전기차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제3 행위자’의 존재가 던지는 함의는 뭘까?

우선 전기차 생산의 탈중국은 정부와 기업에 이들까지 더해져 난항을 예고한다. 미 예일대 조사팀은 중국 배터리 공정의 친환경 수준은 남미보다 그나마 낫다고 보고했다. 예컨대, 중국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대책 순위는 91위이나 칠레는 153위다. 한국은 수산화 리튬의 87.9%를 중국에서, 탄산 리튬의 78.5%를 칠레에서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서방이 중국이 아닌 칠레와 손잡으려면 ‘제3 행위자’의 반발을 피하기 힘들다. 이는 곧 비용 증대로 이어진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도 ‘제3 행위자’들은 전기차의 탈중국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아니라 진정한 녹색전환과 기후정의를 이끄는 ‘길항권력’(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2023, ‘권력과 진보’)의 맹아다. 이들은 안보위기를 빌미로 보호주의를 휘두르며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정부나 탐욕에 눈멀어 지구를 훼손하는 기업들을 견제하는 균형추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길항권력’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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