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3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참여단체 활동가 등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9월23일 세종대로에서 여는 ‘기후정의행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윤지로 |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 ㈔넥스트 미디어총괄
그날 밤 모기는 인정머리 없게도 눈두덩이를 물어버렸다. 하필이면 20여년 만에 중학교 동창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는데… 누굴 탓하랴. ‘앵~’ 소리가 들릴 때 깼으면 팔다리 몇 군데 뜯기고 말았을 텐데 애초에 모기한테 인정을 기대한 내 잘못이다.
‘처서(8월23 혹은 24일)가 지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은 옛말이다. 서울시가 매주 공개하는 모기 채집 통계를 보면 2018년 이후론 8월보다 9월에 더 모기가 많았다. 요즘엔 11월은 돼야 모기의 기세가 꺾인다. 그러니까 ‘입동(11월7 혹은 8일)이 지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고 해야 요즘식이다.
모기가 늦가을까지 활개를 치는 건 길어지는 더위 때문이다. 지난 100년새 여름은 20일이나 길어졌고, 9월 열대야도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모기가 미운 자, 기후변화를 탓할지어다.
모든 게 정쟁에 휘말리고 있는 요즘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기후변화만큼은 진영과 세대, 지역을 불문하고 모두들 걱정한다는 점이다. 기후변화 설문에서 ‘걱정한다’는 응답률이 한국처럼 고르게, 높게 나오는 나라도 드물다. 문제는 걱정만 한다는 데 있다.
기후위기 대응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 한정된 자원은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된다. 8월 말 공개된 정부 예산안은 기후변화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잘 보여준다. 환경부 기후 예산을 포함해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에서도 ‘재생에너지’가 붙은 항목은 줄줄이 삭감됐다. 기획재정부에서 관리하는 기후기금도, 그 안에 포함된 공정한 전환 사업의 몫도 역시나 줄었다.
‘기후 푸대접’은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선거철 열기가 달아오를수록 기후 이슈는 차갑게 식는다. 기후·에너지 문제로 후보들이 격돌하는 이른바 ‘기후선거’가 선진국에선 흔한 일이 됐고, 심지어 같은 ‘기후악당 국가’였던 오스트레일리아마저 이제는 기후선거를 치르는데 우리는 내년 총선에서도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그 누구보다 기후를 걱정한다는 국민이 모여 가장 무관심한 집단이 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최근 유럽에선 2018년부터 시작된 비폭력 환경운동에서 과격한 단체가 파생돼 나오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예술작품에 페인트를 뿌리거나 차 바퀴에 구멍을 뚫는 걸 보면 ‘관종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영국 비비시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결과를 전한다. 이런 운동이 그 자체는 미움을 살지언정 정책 속도를 올리는 데는 도움이 되더라는 것이다. 주류 학계나 환경단체의 요구가 온건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줌으로써 말이다. 일종의 ‘외모 몰아주기’ 효과라고나 할까.
전미경제학회 학술지(AEJ)에도 최근 눈길을 끄는 결과가 실렸다. 1970년 4월22일 미국에선 제1회 지구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는데, 이날 각 지역 날씨에 따라 10~20년 뒤 환경지표에 큰 차이가 났다고 한다. 날씨가 좋으면 행사 참여율이 올라가고, 행사에 참여했던 기억이 향후 환경정책 수용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두 사례가 강조하는 건 집단의 힘이다. 그 누구보다 기후를 걱정하는 국민이 모인 나라에서 국회는 왜, 정부는 왜 기후를 찬밥 취급할까. 걱정어린 마음이 여론으로 뭉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표에도, 지지율에도 별 영향이 없는데 먼저 나설 리 만무하다.
이번 주는 기후대응에 특히나 중요한 한 주다. 20일엔 세계 정상이 참석하는 유엔기후정상회의가, 23일엔 서울에서 대규모 기후정의행진이 열린다. 만명 단위의 평화행진을 다시 여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좀 더 시끄러워지자. 밤잠을 깨우는 모기처럼 꾸준히 앵앵대자. 기후위기에도 발 뻗고 주무시는 저분들이 이불 차고 일어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