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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일본 정부 기록 없나

등록 2023-09-14 19:22수정 2023-09-15 02:36

간토 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 간토 학살 희생자 추모 색깔론을 펼치지 말고 진상 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간토 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 간토 학살 희생자 추모 색깔론을 펼치지 말고 진상 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코즈모폴리턴] 조기원 | 국제뉴스팀장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

간토(관동)대지진 100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달 30일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간토대지진 당시 유언비어로 많은 조선인이 일본 군·경, 자경단에 의해 살해됐다고 전해지는 것과 관련한 정부 입장’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일본 정부는 1923년 9월1일 간토대지진 때 발생했던 일본 군·경과 자경단의 조선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할 때마다 이 답변을 반복해왔다. 일본 국회에서도 2015년 가미모토 미에코 당시 의원을 비롯해 야당 의원들이 그동안 8차례 질문서를 제출했으나, 일본 정부는 기록을 못 찾았다는 답변서를 매번 내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이런 답변을 수긍하기는 어렵다. 일본 내각부 산하 중앙방재회의는 2009년 3월 ‘재해교훈의 계승에 관한 전문조사회 보고서―간토대지진 2편’을 냈다. 이 보고서 제4장 제2절 ‘살상사건의 발생’ 편에 조선인 학살에 대해 자세한 내용이 실려 있다. “간토대지진 때 관헌, 재해 피해 주민과 주변 주민에 의한 살상행위가 다수 발생했다. 무기를 지니고 다수자가 비무장한 소수자를 폭행한 끝에 살해해 학살이라는 표현이 타당한 예가 많았다. 살상 대상은 조선인이 가장 많았다”며 “희생자의 정확한 수는 파악되지 않지만 재해로 인한 사망자의 1~수 퍼센트에 해당해 인적 손실의 원인으로 경시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당시 근거 사료로 도쿄도 공문서관 소장 ‘간토계엄사령부 상보’ 중 ‘진재(지진 재해) 경비를 위한 병기 사용 일람표’ 등을 들었다. 이 사료는 계엄사령부가 육군 부대가 보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군에 의해 11건 53명의 조선인이 살해됐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 이 보고서를 낸 ‘재해교훈의 계승에 관한 전문조사회’를 설치한 중앙방재회의의 회장은 일본 총리이며, 일본 내각부는 “내각의 중요 정책에 관한 회의의 하나”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마쓰노 관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정례 브리핑 때 일본 정부가 만든 중앙방재회의가 낸 이 보고서에 대해 “이전부터 국회 질문과 질문서에 대해 (정부가) 답변해온 것처럼 당해 기술은 유식자(전문가)가 집필한 것으로 정부의 견해를 나타낸 것은 아니다”라며 피해 갔다. 일본 정부는 2018년에는 아리타 요시후 의원이 병기 사용 일람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질문서를 내자 “지적한 병기 사용 사건 조사표는 조사한 범위 안에서는 발견되지 않아 질문에 대해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회피한 적도 있다.

일본 시민단체인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 사실을 알고 추모하는 가나가와현 실행위원회’는 지난 4일 ‘조선인 145명 학살’ 가해자 이름까지 적힌 일본 공문서를 공개했고 한겨레도 이를 보도했다. 마쓰노 장관은 이날 오후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 공문서의 존재를 지적하자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

한국 정부도 100년이라는 중요한 계기가 찾아왔는데도 일본 정부에 진실 규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정부와 여당은 야당 의원이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 일본 시민단체와 오랫동안 함께 주최해온 조선인 학살 추도회에 참석한 것을 문제 삼아 색깔론을 들고나왔을 뿐이다. 그렇게 허망하게 100년이 지나가고 있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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