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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프로파간다가 된 정부의 팩트체크

등록 2023-09-12 19:30수정 2023-09-13 02:39

지난달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가짜뉴스·괴담방지 특별위원회 세미나 ‘가짜뉴스·괴담, 무엇을 노리나? 산업이 된 가짜뉴스’에서 김장겸 특위 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가짜뉴스·괴담방지 특별위원회 세미나 ‘가짜뉴스·괴담, 무엇을 노리나? 산업이 된 가짜뉴스’에서 김장겸 특위 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김준일 | 뉴스톱 대표

윤석열 정부가 ‘가짜뉴스 대응’과 ‘팩트체크’ 중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후보 때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 가짜뉴스 대응을 방통위 최우선 과제로 꼽았고 방통위는 내년 팩트체크 예산을 올해 대비 64%나 늘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 가짜뉴스 신고 상담센터를 설치했고 가짜뉴스 퇴치 티에프(TF)를 운영 중이다. 행정안전부는 팩트체크를 잘하라며 보수 언론단체에 3천만원을 직접 지원했다. 국민통합위원회는 가짜뉴스로 수익 창출을 방지하는 공동 규제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필자가 소속된 뉴스톱은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로부터 팩트체크 국제 인증을 받은 국내 유일의 언론사이며 필자는 2017년부터 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방송기자연합회 등에서 ‘허위정보(가짜뉴스)와 팩트체크’를 주제로 수십차례 강의를 해오고 있다. 정부가 팩트체크에 관심을 쏟겠다니 반갑긴 하다. 그런데 팩트체크 방법론 전문가인 필자가 보기에 정부의 팩트체크는 국제적 규범에 비춰 볼 때 방법도 방향도 틀렸다.

무엇보다 정부는 팩트체킹의 대상이지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물론 정부 정책이나 고위공무원 발언에 대해 정부가 설명을 할 수 있다. 정부가 스스로 “팩트체크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말릴 순 없다. 하지만 정부가 정책을 ‘셀프 팩트체크’ 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가짜뉴스”라고 낙인찍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같은 대통령 아니면 독재국가 지도자나 하는 일이다. 팩트체크는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제3자(예를 들면 언론)를 통해야 권위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언론도 정파성이 있지만 다수 언론의 팩트체크를 교차 대조하면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논란이 불거지자 가짜뉴스 퇴치 티에프 자문단을 선임했다. 자문단은 친정부, 친원전 인사로만 꾸려졌다. 자문단 중 한명인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국민의힘 의원총회 강연에서 “오염수가 방류되고 100년을 살아도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해양 방류는 일본이 판단할 문제지 내정 간섭 할 일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인류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수십년의 원전 오염수(처리수) 방류에 대해 과학자가 왜 위험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오염수 방류에 반대 입장을 보이는 전문가를 배제한 이유로 “국무조정실에서 어느 정도 방향을 정했기 때문에 이에 맞춰 자문단을 구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입맛에 맞는 사람만 팩트체커로 쓰겠단 것이다.

최근 방통위는 지난 대선 김만배 녹취록 기사 인용 보도와 관련해 방송사의 ‘팩트체크 검증 시스템’ 실태조사에 나섰다. 우선적으로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 제이티비시(JTBC)를 점검한다고 밝혔다. 팩트체크 방법론 전문가로서 말하지만 전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 어디에서도 개별 언론의 팩트체크 시스템을 검증하지 않는다. 방송 규제가 거의 없는 미국은 물론, 공영방송이 있는 유럽 주요 국가에서도 정책적 규제는 하지만 특정 보도에 대해 정부기관이 개입하지는 않는다. 방통위는 방송사의 특정 기사에 대해 검열을 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공산전체주의 국가가 주로 하는 방식이다.

의문은 방통위가 왜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제이티비시만 점검하느냐다.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 보도 다음날인 2022년 3월7일 모든 신문과 방송이 이를 보도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주요 방송사의 보도 제목이다. ‘김만배 녹취 공개에…여 “대장동 뿌리는 윤”↔야 “생태탕 시즌2”’(티브이조선), ‘김만배 육성 “윤석열이 봐줬다”…윤 측 “명백한 허위”’(한국방송), ‘“김만배, 윤석열 통해 사건 해결” 녹취 보도‥여 “특검해야”, 야 “명백한 허위”’(문화방송), ‘“윤석열·박영수 통해 사건 해결” 김만배 녹취록…국힘 “명백한 허위”’(엠비엔), ‘김만배 “윤석열 통해 사건 해결”…국민의힘 “허위”’(연합뉴스티브이) 등. 이들 보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현 정부 들어 팩트체크란 단어는 프로파간다(선전·선동)가 되어버렸다.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의 팩트체킹 원칙 1번은 ‘비정파성과 공정성’이다. 팩트체크는 언론과 시민 자율 참여에 맡기는 것이 국제 규범이자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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