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실버타운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늘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김은형 | 문화부 선임기자
2주 전 외출에서 돌아온 집 현관에 광고 전단이 붙어 있었다. 경기도 외곽의 실버타운 분양 정보였다. 소오름. ‘방충망 교체해야 하나’ 따위의 말로도 꺼내지 않았던 내 머릿속을 뒤져 온라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이제는 오프라인으로까지 직접 서비스를 하시겠다 이거지, 이 무서운 인공지능아!(인공지능과 뭔 상관인데)
옆집에도 같은 전단이 붙어있던 건 알아보지 못한 채 ‘요새 호텔식 컨시어지 어쩌고 하는 호화 실버타운도 많다는데 내가 좋아하는 ‘가성비’만을 이토록 강조하다니 이제는 광고 전단도 커스터마이즈하나, 소름 끼치는 인공지능 세상 같으니라구’ 망상의 나래를 펼치며 광고전단을 숙독하기 시작했다. 파닥파닥. 다섯살만 더 먹었으면 당장 뛰쳐나가 계약할 뻔했다.
요새 부쩍 실버타운 광고가 눈에 띄길래 내 눈에만 그런 줄 알았더니 실제로 실버타운 분양이 엄청나게 늘고 있었다. 노인들만 모여 사는 실버타운 선호도가 높지 않을 줄 알았는데 웬걸, 인기 있는 곳은 2년 이상 대기타는 게 기본이란다.
긴 줄에는 일단 서고 본다는 마인드로 실버타운에 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주일은 걸릴 줄 알았던 실버타운 탐험은 십분 만에 끝났다. 수도권 실버타운 관리비를 보니, 그림의 떡이었다. 국민연금과 한달에 십만원씩 적립하는 노후연금과 지금부터 아무리 모아도 억 단위가 쌓일 가능성은 희박한 내 통장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금액을 다달이 내야 한다. 아니 이런데도 몇년 동안 줄을 서야 할 정도라고?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오길래, 오십년동안 난 뭘 하면서 산 건가, 그때 집만 안팔았어도…. 컴퓨터 앞에 앉아 홀로 지하수를 파다가 요즘 트렌드에 맞게 자괴감을 분노로 승화시켰다. 실버타운, 너의 문제점을 내가 샅샅이 파헤쳐주겠어.
아니나 다를까 기사만 검색해도 주르륵 뜬다. 실버타운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아니기 때문에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큰 병에 걸리면 거주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보통 집과 비슷하다. 무엇보다 치매에 걸리면 다른 주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 퇴소해야 하는데, 일부 실버타운은 재계약 때마다 치매 검사를 한단다. 이 부분에서 약간 섬뜩해진다. 실버타운의 결정적인 신포도는 커뮤니티에서 찾았다. 부모가 고급 실버타운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 중 가장 흔하고 재미있던 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자식자랑 배틀이었다. 경제적으로 윤택하니 상당수가 자식들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아 사회적으로 성공시키고 은퇴한 노인들 사이 배틀이 엄청나게 치열하다는 것이다. “우리 아들이 요 근처 대학교수인데”로 포문을 열면 “우리 딸은 스카이 대학교수” “첫째 스카이 교수 받고 둘째 종합병원 과장”식으로 이어지는 응접실 담소에 적응하지 못하면 실버타운 라이프도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자식자랑을 하기 위해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것은 아니다. 매 끼니를 차리기도 힘들고 식욕도 떨어지는 나이에 삼시세끼 누군가 차려주는 영양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실버타운을 찾는 가장 많은 이유였다. 실버타운에서 3년 만에 나온 이야기를 담은 ‘초보 노인입니다’의 저자도 편리한 끼니 해결이 실버타운에 들어가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고 썼다. 저자가 입주 6개월 만에 나오고 싶어진 이유는 실버타운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육십대 초반에 십년 이십년 뒤 미래를 굳이 미리 경험하는 듯한 분위기가 편치 않았던 탓이다. 반면 네살 많은 남편은 기타동아리에 들어가 전임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유로 곧바로 회장까지 맡는 등 커뮤니티에 어울리면서 실버타운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마다 경험은 다르지만 나 역시 아직 젊어서(!)인지 열심히 돈을 모아 좋은 실버타운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는다.
고령화 사회에 노인 주거복지는 더욱 중요해지겠지만 좋은 노인촌(실버타운)과 후진 노인촌으로 양 갈래뿐인 선택지만 주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최근 일본에서 추진 중인 세대 혼합형 실버타운이나 싱가포르에서 시행하고 있는 가족 근접주거 지원정책 같은 것도 도입되면 좋겠다. 어쩐지 내 아들이 제일 반대할 거 같긴 하지만 말이다.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