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 도시재생허브센터에 설치됐던 오송 참사 시민 분향소. 오윤주 기자
[전국 프리즘] 오윤주 | 전국부 기자
슬픔과 미안, 잊힐지 모른다는 불안은 곁에 살아남은 자들만의 몫인가 보다. 14명이 희생된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49재까지 치렀지만 유가족·생존자·시민 등의 한과 아픔은 낫기는커녕 덧나고 있다.
오송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위원회는 충북도·청주시 등이 마뜩잖다. 대표적인 게 ‘떠돌이 분향소’다. 참사 닷새 만에 충북도청에 설치된 합동분향소는 2주 뒤 청주시 도시재생허브센터로 밀려났다. 30일 동안 운영된 분향소는 지난 1일 밤 충북도에 의해 기습 철거됐다. 철거 1시간 전 오송 지하차도 참사 현장에선 49재 추모 행사가 열렸고, 충북도는 “오늘 철거하지 않는다”고 공언까지 했다. 하지만 유가족·시민대책위원 등이 49재 참석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분향소는 사라졌다. “심리전까지 동원한 속전속결 군사작전이었다”는 유가족·시민대책위의 지적이 일리 있다.
오송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중대시민재해 오송 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 등이 4일 청주시청 임시청사에서 분향소 기습 철거에 항의했다. 오윤주 기자
유가족·시민 등은 기습 철거뿐 아니라 2시간 넘는 몸싸움·대치 끝에 얻어낸 분향소 재설치도 야속하다. “천막처럼 작게 만들어달라는 거잖아요. (오송 참사) 인재잖아. 누구 한명만 나갔어도 내 딸 안 죽었어.” 유가족의 절규·몸부림이 이어지자 청주시는 마지못해 손을 들었다.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위는 오송 참사 책임을 물어 36명을 수사 의뢰하면서도 단체장 등 선출직 책임자는 뺀 정부도 미덥지 못하다.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위가 김영환 충북지사, 이범석 청주시장 등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고발한 이유다.
김영환 충북도지사 주민소환 운동본부가 김 지사 주민소환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유가족협의회는 충북지역 재난·안전 최고책임자인 김 지사 주민소환에도 나선다. 김 지사는 지난 7월15일 참사 발생(아침 8시40분 추정) 1시간여가 지난 오전 9시44분 최초 보고를 받고도 괴산으로 향했다. 이날 새벽 괴산댐 월류로 주민이 대피했지만 김 지사 출발 무렵은 상황이 진정된 상태였다. 괴산 상황을 둘러본 김 지사는 오송 주변 옥산 맛집에서 점심까지 먹고 참사 현장엔 오후 1시20분께 방문했다. 집중호우 비상 3단계인 참사 전날엔 충북을 비우고 서울에서 지인과 간담회를 겸한 만찬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 7월20일 합동분향소를 찾아 “내가 현장에 일찍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는 말로 안이한 늑장 대처의 정점을 찍었다.
더불어민주당도 김 지사 주민소환 의지를 밝혔지만, 지금 주민소환은 미래포럼 등이 주축이 된 주민소환운동본부가 추진한다. 이들은 오송 참사 부실·안이 대처뿐 아니라, 친일파 발언, 제천 산불 때 음주 파문 등을 주민소환 사유로 들고 있다. 김 지사 등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단죄하는 데 초점을 둔 시민대책위 등의 가세 여부가 주민소환 성패의 변수다.
주민소환은 주민이 부적합하다고 보는 자치단체장·지방의원 등을 투표로 파면할 수 있는 제도다. 지금 김 지사뿐 아니라 김경일 경기 파주시장, 강영석 경북 상주시장 등의 주민소환도 진행 중이다. 2007년 이후 전국 곳곳에서 주민소환이 추진됐지만 소환이 성사된 것은 지방의원 2명뿐이다. 단체장 주민소환은 모두 무산됐다. 주민소환 투표를 위한 청구서명 정족수(유권자 10~15%), 투표율 기준(33.3%)을 채우지 못했다.
김 지사 주민소환 본부는 4일까지 주민소환 청구서명 수임인을 400여명 확보하고, 청주·충주·제천·보은 등 충북 전역에서 서명을 받고 있다. 반대 또한 만만치 않다. 충북도의회 등 지방의회 10곳의 국민의힘 소속 의원과 보수성향 단체 등은 주민소환 반대 성명을 잇따라 내는 등 ‘김영환 구하기’에 나섰다. 이들은 김 지사 주민소환을 거짓 선전·선동으로 규정했다.
오송 참사를 두고 극과 극이 날을 세운다. 하지만 끓는 물과 얼음이 다 같은 물이듯 김 지사는 자신을 지지·반대하는 이 모두 시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 지사는 최근 “지난 1년 도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오를 범했다. 겸손하겠다”고 했다.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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