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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회장님 연봉을 바로잡으려면

등록 2023-09-03 18:30수정 2023-09-04 02:42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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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사업보고서가 공시되는 3월과 반기보고서가 공시되는 8월이 되면 회장님 연봉에 관한 기사들이 쏟아진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관심은 어느 회장이 연봉 1위인지에 집중되어 있다. 연봉이 적절한지에 관한 기사는 별로 없다. 하지만 주주 관점에서 본다면 심각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다섯 가지만 짚어보자.

먼저, 재벌그룹 회장과 전문경영인 간 연봉 격차가 비정상적인 수준이다. 미등기임원인 회장이 대표이사 사장보다 무려 9배 이상 많은 연봉을 받는 회사도 있다. 나이, 직급, 재직 기간 등을 고려해도 지배주주 일가의 연봉이 전문경영인 연봉에 비해 30%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엔 가족 보수 프리미엄이 존재한다. 임원 보수마저 혈연으로 차별하는 회사의 앞날은 불 보듯 뻔하다.

둘째, 재벌그룹 회장은 한 회사로부터만 보수를 받지 않는다. 모 그룹 회장은 작년에 3개 계열회사에서 각각 106억원, 73억원, 42억원을 받았다. 한 회사에만 전념해도 받기 어려운 거액 연봉을 무려 3곳으로부터 받았다. 지난해 이렇게 복수의 계열회사에서 최소 5억원 이상 보수를 받은 임직원은 95명이었다. 실제 일하지 않고 보수를 받았다면 이는 횡령에 해당한다.

셋째, 재벌그룹 회장의 퇴직금도 특혜투성이다. 연봉이 부당하게 높으니 퇴직금도 부당하게 높고, 연봉 받는 회사가 여럿이다 보니 퇴직금도 여러 회사에서 받는다. 어린 나이에 임원이 되고, 70살이 넘도록 자리를 지킨 덕에 근속기간마저 길어져 퇴직금 액수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여기에 임의로 정한 지급률 배수까지 곱하면 이미 거액인 퇴직금 액수는 더욱 증폭된다. 이런 이유로 4년 전 모 그룹 회장 유족은 무려 600여억원의 퇴직금을 상속받았다.

넷째, 재벌그룹 회장은 불법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끼쳐 자리에서 물러났어도 때가 되면 다시 복귀해 거액의 연봉을 챙긴다. 어떤 회장은 배임, 횡령, 사익 편취로 재판받는 도중에도 물러나지 않고 평상시처럼 보수를 받는다.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게 명분이다. 일반 직장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특권들이다. 유죄가 확정돼 법무부 취업제한 조치를 받고도 물러나지 않고 해마다 50여억원을 받은 회장도 있다. 이건 특권 행사를 넘어 법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다섯째, 재벌그룹 회장은 등기임원에서 미등기임원이 되어도 연봉이 깎이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회사 등기임원들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 직급이 회장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회장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도 법적 책임으로부터 크게 자유로운 미등기임원이 되는 것은 책임경영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다.

우리나라에서 일정 요건을 갖춘 상장회사 임원은 개별적으로 보수의 구체적인 산정 기준과 방법을 공시해야 한다. 문제가 백일하에 드러나기 전에 스스로 이를 해결하라는 취지이다. 하지만 회장님들은 부끄러움을 몰라서인지 전혀 효과가 없다. 또, 임원 보수는 정관에서 정하지 않은 경우 주주총회의 결의로 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급할 보수액을 미리 정해 주총에서 결의 받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그래서 회사들은 전체 임원에게 지급할 보수 한도만 안건으로 상정해왔고, 대법원도 이를 용인했다. 안건 내용이 보수 한도에 불과하다 보니 늘 무사통과다.

그럼 재벌그룹 회장의 연봉은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영국식 세이온페이(say-on-pay) 제도의 도입을 제안한다. 영국은 2013년부터 기존의 세이온페이 제도를 이원화해 당해연도에 적용할 임원 보수 정책은 주주 승인 사항으로 전환하고, 전년도 보수 집행 내용은 주주의 권고적 표결 사항으로 남겼다. 보수 정책에 대한 찬성표가 50%에 미달하면 전년도에 승인받은 보수 정책을 사용하거나 임시주총을 개최해야 한다. 보수 정책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최소 3년에 한번은 주주로부터 승인받아야 한다.

영국 상장회사들이 보수 정책에 담아야 하는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우리도 구체적인 내용을 담도록 해야 한다. 연봉 책정이 가족 임원에게 유리한지, 여러 계열회사로부터 받는 것이 허용되는지, 퇴직금 지급률 수준은 어떤지, 그리고 불법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임원과 미등기 그룹 회장 처우에 관한 내용도 포함해야 한다. 그러면 회장님들도 더는 일반 주주를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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