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3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 현장을 찾은 한 시민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열린편집위원의 눈] 이채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
언론에는 의제 설정이라는 중요한 책무가 있다. 언론이 지속해서 사실을 보도함으로써 시민사회에 던지는 물음이 곧 의제가 된다. 그러나 요즘 언론은 사실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이 보도 자체에만 중점을 두느라 의제 설정의 무게를 잠시 잊은 듯하다.
연일 ‘무차별 범죄’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신림동 사건, 서현역 사건 등 범죄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쌓인다. 중요한 것은 범죄가 일어나는 무대만 바뀔 뿐 범죄 그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의 보도도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된다. 중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범죄 사실보다 언론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헤드라인 때문에 더 놀랐다. ‘어릴 적 영재원 출신’, ‘사이코패스 검사 불가’, ‘스토킹 당한다고 생각’ 등 제목으로 포장한 기사들은 눈을 사로잡기는 쉬웠지만, 피로는 배로 쌓이게 했다.
자극적인 단어는 단순히 한번의 클릭을 유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뇌에 각인을 시킨다. 예를 들어 ‘30년 동안 성관계 맺지 못해'라는 제목을 사용함으로써 언론은 피의자에게 변명할 수 있는 공개 재판의 무대를 자처하게 된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사회구조적 문제,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잘못된 성 인지 관념 같은 주요 의제에서 탈선한다. 피의자와 피해자의 서사와 선정적인 보도는 사실을 넘어 새로운 무대를 창조한다.
이제 새로 설정된 무대에서 담론의 주체가 된 시민들도 무엇을 다루어야 할지 잊은 채 피의자와 피해자의 서사를 경쟁시키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누가누가 더 불행하게 살았는가 떠들며 불행만을 다투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의제를 설정할지에 관한 고민인데, 지금의 언론에는 이 고민이 빠져 있고 단순히 파격적인 콘텐츠 그 자체를 생산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의제에 대한 고민이 빠진 언론은 범죄의 공범이 될 뿐이다.
이런 콘텐츠 경쟁 구조에서는 파편적인 정보만을 시민들에게 전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시민들에게 형량을 높이고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응수하는 싸움이 이어져야 한다는 믿음을 심어준다. 이 믿음을 토대로 사람들은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에 관해서만 관심을 가지게 된다. 폭력에 반복적으로 노출됨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폭력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한다. 이는 폭력을 놀이로 여기는 가해자를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기사를 접하는 사람들을 폭력에 무기력하게 만든다.
물론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의제를 다루는 기사도 있다. 한겨레가 보도한
‘이태원 참사 300일, 우린 안전해졌나…안전과제 이행률 9%’와 같은 기사가 한 예다. 막을 수 있었던 참사를 방치한 행정의 문제를 보여준 기사였다.
‘신림동 밤10시, ‘안심이 앱’ 켜고 ‘스카우트’ 누르자 전화가 왔다’는 기사도 인상적이었다. 범행 장소가 어딘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범죄 발생에 깔린 사회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이처럼 의제를 제시하는 기사의 양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쏟아지는 자극적인 기사에 묻혀, 수많은 언론은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화제가 될 만한 소재를 골라 자극적인 언어로 재구성하는 것 같다.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폭력의 이미지들이 자신들을 무감각하게 만들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이미지들을 보고 무엇인가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폭력을 외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말로 범죄의 예방을 원한다면, 범죄를 전시하는 보도행위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한겨레만큼은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이야기 그 자체를 던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열린편집위원의 눈’은 열린편집위원 7명이 번갈아 쓰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