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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뉴노멀-혁신] AI교과서라는 우편마차

등록 2023-08-27 18:17수정 2023-08-28 02:05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6월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6월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김진화 | 연쇄창업가

지난 글에서 슘페터의 우편마차 비유를 소개했다. 우편마차를 아무리 길게 이어붙여 봤자 철도혁명이 오지 않는 것처럼, 단지 전화기를 휴대한다고 모바일 혁명이 온 게 아니며, 전기로 차를 굴린다고 모빌리티(이동수단) 혁신이 절로 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한국에 이 비유가 특히 잘 들어맞는 것은, 새 기술을 기존의 무언가에 그저 갖다 붙이는 식의 견강부회를 혁신으로 여기는 흐름이 횡행해서다. 새로 주목받는 기술만 등장하면 냅다 테마주로 당겨 쓰기 급급한 민간만 그런 게 아니다. 뭔가 뜨는 것 같으면 조건반사적으로 ‘한국형 ○○○’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관의 민첩함도 만만치 않다. 최근 교육부가 야심 차게 미는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도 그렇다.

교육부에 따르면,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는 3대 교육개혁 과제인 디지털 교육혁신의 하나로 추진되며, 2025년 수학, 영어, 정보, 국어(특수교육) 교과에 우선 도입하고, 2028년까지 국어, 사회, 역사, 과학, 기술·가정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되면 학생은 학습 수준·속도에 맞는 배움으로 학습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학부모는 풍부한 학습정보를 바탕으로 자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또 교사는 학생의 인간적 성장에 더 집중할 수 있어 “우리 교실은 학생 참여 중심의 맞춤교육이 이루어지는 학습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이주호 장관은 “교실에 학생 20명이 있다면 20명의 보조교사를 두는 효과가 있다”고도 했다.

예전에 한국 교육을 두고 이런 넋두리가 있었다.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들이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 최근에는 학교 시설이 개선된 탓인지 “21세기 학생을 20세기 교수들이 19세기 방식으로 가르친다” 정도로 변형되었다. 교과서가 여기서 말하는 19세기 방식의 근간이 아닐까? 교과서에 얽매이면서 그것을 디지털화하고 나아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맞춤식으로 학습시키겠다는 것이야말로 21세기 최신 기술로 고작 20세기 지식 주입을 효율화하겠다는, 우편마차 이어 붙이기가 아닐까?

미국에서 세 자녀를 각각 초중고 공립학교에 보내며 놀라웠던 점은 교과서가 그저 참고자료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토론과 협업 중심 수업에서 교과서는 그저 교실 한쪽에 두고 필요할 때만 들춰보는 자료일 뿐이었다. 교사의 자료도 협업툴(소프트웨어)로 제공되고 토론과 과제도 협업툴 중심으로 전개된다. 미국의 이 방식이 정답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필자가 매사추세츠주에서 아이들을 통해 체험한 공교육 디지털 전환의 핵심은, 토론과 협업이지 별도의 전자장치까지 요구되는 거창한 국책 사업이 아니었다.

교과서를 디지털화하고 거기에 인공지능을 갖다 붙인다고 디지털 혁신이 되고 교육 현장이 달라질 것이라는 낙관은 한갓져 보인다. 20명의 보조교사를 둔 것 같을 거라는 그 효과는 교과서 내용을 맞춤식으로 수용시키겠다는 지극히 20세기적 교육목표의 기술적 포장이자 확장일 뿐이다. 아이들이 검색툴로 인공지능까지 자유롭게 활용하게 된 마당에 과연 교과서라는 표준화된 지식 습득에 여전히 얽매여야 할까.

대통령은 교육개혁을 정부의 3대 개혁과제 중 하나로 꼽았고, 교육부는 국가책임 교육/돌봄, 디지털 혁신, 대학개혁을 자신들의 3대 핵심 정책으로 삼겠다고 한다. 전임 정부들은 학교에 랜선 깔고 교실을 디지털 기기로 치장하는 걸 디지털 교육이라 우기더니, 새 정부는 교과서에 인공지능을 갖다 붙이는 걸 혁신이라 포장하는 모양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 도입계획을 보니 더더욱 이런 생각이 든다. 진정 교육개혁을 바란다면 교육부 폐지 로드맵부터 시작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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