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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현장의 연대’를 보고 싶다/김회승

등록 2006-03-23 18:33수정 2006-03-23 18:35

김회승 논설위원
김회승 논설위원
아침햇발
지엠대우 부평공장에 봄소식이 들린다. 5년 전 집배원이 전해 준 정리해고 통지서 한 장으로 생존의 벼랑끝에 몰렸던 노동자들의 복직 소식이다. 이미 1천이 넘는 해고자가 재입사했고, 나머지도 뜻만 있으면 모두 복직할 수 있게 됐다. 청와대는 “선진적인 노사관계의 지평을 여는 모범 사례”라며 이례적인 환영 논평을 냈다. 아니나 다를까, 보수언론은 “노조의 파업 자제에 대한 시장의 보상”이라고 치켜세운다.

부평공장은 단일 규모로는 사상 최대인 1750명이 해고되는 아픔을 겪은 곳이다. 동료를 잊지 않은 노조와 약속을 지킨 회사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여기까지면 딱 좋았을 일이다.

‘노사 상생’의 상찬을 받은 바로 다음날, 부평공장 앞에는 ‘복직할 수 없는’ 해고자들이 모였다. 위장도급에 항의해 싸우다 해고된 이 회사 창원공장 하청업체 비정규직이다. 창원공장은 지난해 6개 하청업체가 모조리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노조를 만들어 정규직화 투쟁에 나서자 하청업체는 문을 닫고 87명을 해고했다. 복직을 요구하며 벌인 6개월여의 천막농성은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청구로 되돌아왔다. 하청노조 지회장은 그젯밤 전원 복직을 요구하며 동료 1명과 함께 창원공장의 50m 굴뚝에 올라갔다. 해고자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꼬리표를 붙이는 ‘자본의 두 얼굴’ 앞에서 그는 절망했을 것이다.

지엠대우의 해고자 복직은 빠른 경영 정상화 덕분이었다. 불과 3년 만에 자동차 판매는 세 배가 늘었고 지난해에는 647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똑같이 일하면서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인 비정규직의 값싼 노동력이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창원공장 하청노조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정규직 노조가 적극 지원한 덕분에 고공농성도 가능했다. 정규직 노조가 하청노조 투쟁에 적극 참여했고 특별교섭을 통해 선별 복직안도 끌어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하청노조는 노조를 만들기만 해도 잡아 가두던 1970~80년대와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다. 정규직 노조의 지원이 없으면 공장 안에서 변변한 집회 한 번 열기 어렵다.

부평공장의 ‘반쪽 상생’은 우리 노동 현장의 씁쓸한 현실이다. 상급단체는 수십억원의 비정규직 기금을 만들고 집중적인 조직화 사업을 펼친다지만 정작 현장의 분위기는 썰렁하다. 노조 가입원서까지 돌리며 연대하다가도 막상 비정규직이 투쟁에 나서면 정규직 노조는 주춤한다. ‘함께 결정하고 투쟁하고 책임진다’는 이른바 ‘3대 원칙’을 정했지만 실천은 찾기 어렵다. 원·하청 공동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선 사업장 노조는 조합원의 불신을 받기 일쑤다.

고용구조가 단일한 이해관계로 뭉칠 수 없게 갈기갈기 찢겨지고 있는 현실에서 고용불안은 정규직, 비정규직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니다. 나이 든 정규직이 젊은 비정규직과의 생존경쟁에 위기감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비정규직 몫이 늘면 우리 몫이 준다는 사용자의 압박은 떨치기 힘든 유혹이다. 골치아픈 비정규직 싸움보다는 사쪽과의 적당한 상생이 편한 것도 사실이다.

단위 사업장 노조가 비정규직과 권력을 공유하고 연대하지 않고는 분열을 피할 수 없다. 보수단체의 해괴한 노조규탄 주장에 맞대응하는 건 다음 문제다. ‘대공장 이기주의’나 ‘정규직 양보론’의 부당성이 모든 문제를 자본의 탓으로 돌리려는 노동운동의 무책임까지 면탈해주진 않는다. 노동현장이 조합원의 정서, 엄밀히 말해 정규직의 정서에 안주해서는 전망을 찾을 수 없다.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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