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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봉규의 사람아 사람아] 누구의 뼈인지도 모르는 채 함께 묻혀 있었다

등록 2023-08-22 18:22수정 2023-08-23 02:35

제노사이드의 기억 제주 _06
섯알오름 학살터 웅덩이 흙탕물 속에서 뒤엉킨 주검을 수습했으나, 구별이 어려워서 칠성판(관 바닥에 까는 나무판에 북두칠성 모양의 구멍을 7개 뚫은 것) 위에 머리뼈 하나, 등뼈, 팔뼈, 다리뼈 등 큰 뼈를 중심으로 한구씩 주검을 구성해 이장했다. 백명 넘는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죽어 누구의 주검인지도 모르는 채 같이 묻혀 무덤도 같고, 제사도 같이 치르니 그 자손은 하나다는 의미에서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 이름붙였다.

2016년 4월29일 백조일손 묘역을 찾아 저물녘 어슴푸레한 분위기를 찍으려다가 모기떼의 습격을 받았다. 수십~수백마리 모기떼들은 눈, 코, 입 등 몸뚱이 모든 곳을 파고들었다. 입을 벌려 숨을 들여 마셨다간 모기들이 기도로 떼지어 넘어갈 것만 같았다. 비석도 없는 무덤들은 엎드려 절할 수 없을 정도로 촘촘했다. 묘역 뒤 산방산을 배경으로 몇장 찍고서 돌아서 나와야 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2016년 4월29일 백조일손 묘역을 찾아 저물녘 어슴푸레한 분위기를 찍으려다가 모기떼의 습격을 받았다. 수십~수백마리 모기떼들은 눈, 코, 입 등 몸뚱이 모든 곳을 파고들었다. 입을 벌려 숨을 들여 마셨다간 모기들이 기도로 떼지어 넘어갈 것만 같았다. 비석도 없는 무덤들은 엎드려 절할 수 없을 정도로 촘촘했다. 묘역 뒤 산방산을 배경으로 몇장 찍고서 돌아서 나와야 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제주섬에서 4·3사건으로 3만여명이 희생되면서 피바람이 멈추고 이제 끝났다고 여길 때쯤에 또다시 학살의 광풍이 불었다. 한국전쟁이 터진 거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인민군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미리 붙잡아둔 예비검속자 가운데 중요인물은 처형하도록 지시했다. 4·3사건 무장대를 진압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던 토벌대 군인들이 예비검속자들을 집단 총살했다. 그리고 4·3사건으로 실형을 언도받은 사람들은 당시 제주도에는 형무소가 없어 대전형무소 등 전국 각지 형무소로 이송돼 분산 수감돼 있었는데, 상당수가 이 시기에 육지에서 예비검속된 보도연맹원 등과 함께 학살되었다.

제주섬에서 가장 많은 예비검속자들이 희생된 곳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의 야트막한 섯알오름(40.7m) 학살터다. 옛 일본군의 탄약고 터였는데, 해방 직후 미군에 의해 폭파되며 큰 웅덩이가 두개 생겨났다.

당시 제주 모슬포경찰서 관내에는 예비검속자 347명이 구금돼 있었다. 그 가운데 중요한 자로 분류된 D, C급 249명은 육군정보국에 인계돼 그중 60여명은 1950년 7월16~20일 사이 어느 날 먼저 학살됐고(장소 미상), 8월20일 새벽 2시 60여명, 그리고 새벽 5시 130여명이 계엄사령부 지시에 따라 모슬포 주둔 해병대 군인들에 의해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총살됐다(자료나 증언마다 조금씩 그 내용이 달라 날짜와 예비검속자 수나 희생자 수에 차이가 있다). 1956년 이곳에서 희생된 이들 가운데 한림지역 주민의 희생자 61 구가 만벵듸공동장지에 , 모슬포지역 주민 희생자 149 구 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132구가 백조일손묘역에 안장됐다.( 치아 등으로 신원이 확인된 17 구는 개인묘지에 안장 )

백조일손 묘역에 안장된 유해들은 섯알오름 학살터 웅덩이 흙탕물 속에서 뒤엉킨 주검을 수습했으나, 구별이 어려워서 칠성판(관 바닥에 까는 나무판에 북두칠성 모양의 구멍을 7개 뚫은 것) 위에 머리뼈 하나, 등뼈, 팔뼈, 다리뼈 등 큰 뼈를 중심으로 한구씩 주검을 구성해 이장했다. 백명 넘는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죽어 누구의 주검인지도 모르는 채 같이 묻혀 무덤도 같고, 제사도 같이 치르니 그 자손은 하나다는 의미에서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 이름붙였다.

백조일손 묘역은 제주섬 최대 집단학살 묘역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지만, 찾아가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만 내가 알고 있던 지번은 광활한 공동묘지였고, 그 남쪽 끄트머리 한편이 백조일손 묘역이었다. 2015년 11월4일 처음 찾았는데, 대중교통인 버스를 타고 걸어서 접근을 시도했지만 너른 공동묘지를 헤매다 날이 어두워져 되돌아서야 했다. 미리 알아놓았던 정보는 공동묘지 주소와 인터넷에서 보았던 한장의 사진이 전부였는데, 백조일손 묘역 뒤로(전방 2.7㎞) 산방산이 우뚝 솟아있는 장면이어서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당시와 달리 요즘은 휴대전화기에서도 ‘백조일손 묘역(지묘,지지)’이라고 검색하면 정확한 위치를 비롯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다음날 택시기사님 도움을 받아 겨우 백조일손 묘역을 찾아갈 수 있었다. 처음 백조일손 묘역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다. 입에선 아이고~ 란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묘역은 생각보다 넓어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왼쪽에 세워진 국기게양대엔 태극기가 조기로 걸려있었다. 봉분들은 엎드려 절할 수 없을 정도로 촘촘했다. 해가 저물자 밤하늘의 별이 반짝거렸다.

비석도 없는 무덤들을 바라보며 희생자들이 총살되기 직전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다. 컴컴한 새벽 섯알오름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이들은 짙은 색 군복을 입고 철모를 쓴 채 소총을 겨누고 있는 해병대 군인들이었다. 언제 방아쇠가 당겨질지 모르는 사람들은 모든 희망의 끈을 놓았을 것이다. 순간 총부리에서 굉음과 불을 뿜었고, 모두가 웅덩이에 꼬꾸라져 쓰러졌을 것이다. 그날의 상상은 거기서 멈췄다. 보잘것없는 미천한 상상력으로는 더는 죽음에 맞닥뜨린 순간을 짐작할 수 없었다. 우울함에 빠진 나에겐 그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겨울에 묘역을 찾고 싶다. 하얀 눈이 뒤덮인 봉분 위에 국화 한송이라도 올려놓고 비참하게 희생된 분들의 영혼들을 달래드리고 싶다. 그 모습을 생각하니 덜 슬퍼 보일 것만 같다.

김봉규 | 사진부 선임기자

다큐멘터리 사진집 <분단 한국>(2011), <팽목항에서>(2017)를 출간했다. 제주 4·3 학살 터와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전국에 흩어진 민간인학살 현장을 서성거렸다. 안식월 등 휴가가 발생하면 작업지역을 넓혀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비롯한 아시아, 폴란드 전역과 독일, 네덜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등 나치 시절 강제 및 절멸수용소 등을 15년 넘게 헤매고 다녔다.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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