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종교학의 쓸모

등록 2023-08-21 18:52수정 2023-08-22 02:4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세상읽기]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종교학전공 교수

지난 6월 경향신문에 실린 김월회 선생의 칼럼 ‘다민족 시대에 대학이 내놓을 답’은 한국의 종교학 연구자들에게 대단히 고무적인 글이었다. 그는 당면한 인구 위기 문제에 외국인 유입이 실질적인 대안이 되고 있음을 지적한 뒤, 장차 본격화될 다민족·다문화 사회에서 대학이 맡아야 할 책무를 제시하였다.

그 첫번째 대안이 바로 “종교학 연구와 교육의 확대”였다. 사회 안에 다양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수반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교에 대한 연구 역량이 갖추어져야 하고, 필수교양으로서 체계적으로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 분야 종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종교학 연구와 교육이 확대되어야 할 이유 몇가지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응답하려 한다.

김월회는 대학에서의 종교학 연구, 교육 확대의 모델로 대표적인 다문화 사회인 미국의 사례를 들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아이비리그와 주립대학을 포함한 주요 대학 대다수는 종교학 학위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의를 개설하고 있는 학교들은 더욱 많다. 지역학 등 학제 간 연구가 이루어지는 대학 내 연구기관들에도 종교학자들이 폭넓게 포진해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 각국 및 일본 등과 비교해도 종교학의 제도적 기반이 대단히 취약하다. 몇몇 대학에 설치된 학과들조차 2000년대 이후의 대학 구조조정 속에서 상당수 폐과, 축소의 위기에 처해 있다. 각국 학계의 규모나 역사적 맥락의 차이 탓도 있지만(초기 종교학은 제국주의 시대에 발생, 발전하였다), 한국 종교학은 그 학술적, 사회적 수요에 비해 학과나 전문 연구자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자연히 이 분야에 대한 인지도도 낮다. 그래서 종교학에 대한 흔한 오해들이 있다. 첫째, 특정 종교의 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한 학문인가? 그렇지 않다. 근대 학문으로서의 종교학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신화, 경전, 의례, 신앙공동체의 발견으로부터 출발했으며, 특정 종교문화의 시각에 사로잡혀 객관성을 잃는 일을 체계적으로 지양해왔다.

둘째, 그렇다면 반종교적인가? 다시 말해, 이 학문을 배우면 기존의 믿음이 흔들릴 수도 있는가? 자기 밥줄인 연구 대상을 적대시하는 학문이 있겠는가. 물론 종교에 대한 지식의 확대가 개인의 신앙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 교리 사이의 우열을 따지거나 특정한 신념을 공격하는 일은 학문적 종교연구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종교학은 특정 종교 전통의 문제의식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학, 교학, 경학 등과 다르고, 규범적, 관념적인 주제가 일차적인 관심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종교철학과도 다르다. 종교학은 인간의 상상력과 그 산물에 대한 역사적, 사회과학적, 비교론적 연구다. 그 ‘상상’에는 초자연적, 비합리적인 것이나 ‘진실에 대한 상상’인 ‘믿음’도 포함된다. 상상력이 만들어낸 신념이나 세계관, 물질적 생산물들이나 제도들도 좋은 검토 대상이다. 심오한 지혜, 숭고한 예술, 이타적인 자기희생도, 또는 극악한 범죄, 잔혹한 전쟁, 불가해한 광기도 종교 때문에 발생하곤 한다. 인문사회과학이 인간의 행위와 사회문화적 구성물에 대한 연구라면, 그 첨단 혹은 극단에 있는 분과인 셈이다.

이 분야에서 생산하는 지식이 응용될 수 있는 영역도 적지 않다. 한국은 이미 다종교 사회였고, 이주, 다원화 등으로 문화적 다양성은 한층 증대될 것이다. 타자와의 공존, 종교 간 갈등, 종교와 세속사회의 관계를 둘러싼 수많은 정책적, 법제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나아가 시민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인간의 종교적 마음에 기생하는 기이한 음모론에 거리를 두게 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반국가세력이 인권 운동가로 위장해서 우리 사회를 공격하고 있다” 같은 믿음 말이다.

물론 이런 필요성이나 가치는 일차원적인 시장 논리에서는 정당하게 평가되기 어렵다. 대학은 종종 졸업생 취업률도 특별히 높지 않고 사립학교 재단을 후원하는 종교에 딱히 좋은 소리를 해주는 것도 아닌 종교학 관련 학과를 부담스러워한다. 가능한 대안은 국공립대학들이 선제적으로 학과 및 연구기관을 설치하여 우수한 연구자들을 양성, 고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공자만이 아니라 인접 학문 연구자, 학생, 시민, 공직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내가 쓰는 예산’만 민생이라는 여야…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12월3일 뉴스뷰리핑] 1.

‘내가 쓰는 예산’만 민생이라는 여야…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12월3일 뉴스뷰리핑]

시작도 못 한 혁명 [똑똑! 한국사회] 2.

시작도 못 한 혁명 [똑똑! 한국사회]

비루한 한동훈의 소심한 줄타기 [뉴스룸에서] 3.

비루한 한동훈의 소심한 줄타기 [뉴스룸에서]

[사설] 특활비·예비비 공개·축소하고, 여야 예산안 합의하라 4.

[사설] 특활비·예비비 공개·축소하고, 여야 예산안 합의하라

정우성 논란 계기로 ‘아버지의 역할’ 새롭게 논의해야 [왜냐면] 5.

정우성 논란 계기로 ‘아버지의 역할’ 새롭게 논의해야 [왜냐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