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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우리의 인권은 연결돼 있다

등록 2023-08-20 18:52수정 2023-08-21 02:42

미국 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사건을 뒤집은 지 1년을 맞은 2023년 6월24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이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미국 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사건을 뒤집은 지 1년을 맞은 2023년 6월24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이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세상읽기] 류영재 |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 판사

처음 의문을 가졌던 건 형법상 낙태죄에 관한 논의를 접했을 때였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충돌하는 상황’이란다. 가만히 따져보니 맞는 말 같았다. 그럼에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임신한 여성과 태아가 이토록 적대적 대립 관계에 놓인다니. 모와 태아는 각자 살기 위해 서로를 해하여야 하는 사이란 말인가. 임신중지를 결단하는 그 순간만을 딱 잘라 보면 그러한 대립 관계가 관찰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출산과 양육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신을 감행하는 여성을 상정하기 어렵다는 점과 보호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것은 아이에게도 위험하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모와 태아의 관계를 적대적 대립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 과연 실질에 부합하는 분석일까.

이러한 위화감은 연이은 사회현상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영아 살해 및 유기 사건에서 부모와 영아는 쉽게 적대적 대립 관계에 놓인다. 아이를 낳고도 유기하거나 살해한 원인, 유기된 아이가 겪게 되는 고통, 아이를 갖게 된 부모와 태어난 아이 모두에게 최선이 되는 방법 등을 고찰하지 않고, 부모를 쉽게 ‘아이를 죽이거나 버리는 부모’로 규정지은 뒤 ‘그러한 부모’로부터 영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다. 실질에 부합하는 분석일까. 그러한 분석 아래 마련되는 대책들이 아이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을까.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교육 현장의 여러 문제들도 그러하다. 교사들의 인권 및 노동권이 침해되거나 위협당하는 상황을 막고 교육의 범위와 내용을 재정립하는 것이 시급할 것 같은데, 그 논의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이 적대적 대립 관계에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마치 교사는 학생의 인권을 침해해야만 안전하고 적절하게 교육할 수 있는 존재인 양. 한 아이를 무사히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교육의 본질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관계 설정이 실질에 부합하는지, 교사 보호 및 교육 개념 재정립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다행히도 이 점을 아는 교사들이 먼저 ‘교사의 인권과 학생의 인권은 제로섬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다.)

문제가 된 상황만을 딱 잘라 그 단면을 들여다보며 그 상황에 놓인 당사자들의 권리관계를 분석해 문제를 특정한 권리 충돌 상태로 정의하는 환원주의적 태도가 반복된다. 익숙하지만 이상하다. 모체와 태아,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처럼 공통의 목표를 공유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각자 취약한 상태에 놓여 고통받는데 그들의 관계성을 고려하지 않고 그 상황을 권리 충돌 또는 가해와 피해로 정의하는 것이 타당한가.

이러한 분석은 결국 갈등 상황에서 드러나는 개개인의 잘잘못만을 가려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하는 대안을 제시하게 된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상황 자체를 개선해 그들의 공동 목표(예를 들어 부모가 임신 및 출산, 육아를 감당할 수 있게 되고 그들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안전하게 양육되는 것, 교사와 학생이 학생의 성장이란 교육의 목적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를 달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지 못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사람을 ‘온전한 권리 영역을 가진 독립적 개체’로 바라보는 기존의 권리중심적 접근 대신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사회적 존재’로 바라보며 사회적 관계가 사람들의 인권 향유에 영향을 미친다고 인식할 것을 제안한다. 사람들이 인권을 온전히 향유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가능한 사회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서로의 인권을 존중할 의무, 각자의 인권 향유가 가능한 사회관계를 만들기 위해 연대하고 협력할 책임을 진다. 이러한 접근 방식 아래에서 문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권리 충돌 그 자체보다는 그들이 놓인 상황 자체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집중하여 대응할 수 있다.(‘인권에 대한 관계적 접근’, 이주영)

처음으로 돌아가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모와 태아는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인 특수한 관계에 처해 있고, 태아의 안위는 곧 모의 안위라는 점에서 그들의 이해관계는 충돌하지 않으며, 모와 태아의 관계를 ‘가해자 대 피해자’의 관계로 고정해서는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바람직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고 설시하였다. 인권에 대한 관계적 접근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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