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가 지난 10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조혜정 | 정치팀장
한동안 한 아이돌 겸 배우 ‘덕질’을 했다. 틈날 때마다 온라인 팬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그의 출연작이나 활동 감상평을 올렸다. 공감과 동지애를 드러내는 댓글이 수없이 붙었다. 그러다, 팬들이 입 모아 찬양하는 한 솔로곡 공연 동영상이 내 취향은 아니라는 글을 썼다. “그러게. 다들 좋아해서 아무 말 안 했는데, 실은 나도 그래. 그래도 우리 ○○ 너무 멋있지 않냐” 같은 댓글을 기대하면서. 그런데 웬걸. ‘이딴 글을 왜 쓰냐’부터 어디 옮기기 어려운 욕설까지, 상상도 못 한 무서운 댓글이 순식간에 수십개가 달렸다.
팬덤의 시작은 호감이지만,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그 사람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맹목적 추종에 가닿는다. “우리 ○○이 잘생긴/예쁜 거, 멋있는 거, 귀엽고 청순하고 섹시하고 생각 깊고 배려심 많고 속 단단한 거 혼자 다 하는 거 모르는 사람 없게 해주세요”라는 찬양 레퍼토리가 그 결정판이다. 재밌는 건 어떤 연예인 팬커뮤니티를 가봐도 이런 글은 흔히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내 눈에만 완벽한 사람을, 왜 남들은 알아주지 않을까 답답해하는 거다.
“이재명의 승리가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렸습니다. 대표님을 응원합니다”…. 지난 1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에 네번째 출석하면서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문에 달린 댓글이다. 어쩐지 “모르는 사람 없게 해주세요”의 냄새가 난다. 제1야당 대표를 상대로 한 검찰의 집요한 수사는 정치 탄압이라는 비판을 사고도 남지만, 그와 별개로 이 대표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동일시하는 데 선뜻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호감에 기반한 연예인 팬덤과, 정치적 가치 판단이나 신념까지 포괄하는 정치인 팬덤이 같을 순 없다. 하지만 정치인 팬덤이 ‘나만 옳다’는 아집과 결부되고, ‘남은 틀렸다’는 적대감과 결합하면 위험해진다. 목소리 큰 팬덤이 여론을 좌우하며 실제 민심을 가리고, 정치인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편과 함께해야 하는 정치에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기본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
정치인 팬덤이 현실 정치에 직접 참여하겠다고 나서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민주당 혁신위원회가 지난 10일 내놓은, 당비(최소 1천원)를 여섯달 이상 납부한 권리당원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혁신안이 대표적이다. 이는 친이재명계와 이 대표를 지지하는 강성 당원들의 요구를 대폭 반영한 것이다.
이게 총선을 앞둔 민주당의 혁신안이 될 만큼 시급한 문제냐는 지적은 차치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은 맞을까. 민주당 당원은 250만명이지만 권리당원은 그 절반(120만명)이고, 권리당원의 참여는 이 대표가 선출된 지난해 전당대회 투표율 37.09%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대부분은 이 대표를 지지하는 강성 당원들이다. 이들이 민주당 내부 의사결정에 힘을 발휘할수록 ‘이재명이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주장은 민주당 안에서 힘을 얻을 것이다.
유권자의 정치 참여가 선거 때 투표 말고는 사실상 없었을 때, 우리가 사랑하는 정치인의 진가를 알리자며 등장한 팬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은 획기적이고 신선한 참여민주주의의 역사를 썼다. 이후 20여년, 한국 사회에서 정치 참여의 방법은 매우 다양해졌고, 우리는 참여만이 아니라 공론장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도 민주주의에서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철학자 김영민은 저서 ‘사랑, 그 환상의 물매’에서 “사랑은 그 열정의 기울기에 따른 사소한 차이들의 나르시시즘”이라며 “현실의 물매가 환상을 낳고 그 환상의 물매는 사랑을 번성케 하는 법”이라고 했다. ‘사랑’의 자리에 ‘참여’를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다. 그들만의 세상이 내 눈에 완벽한 정치인을 낳고, 그런 환상이 그들로 한정된 참여를 부추긴다. 결과는, 다시 그들만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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