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벵갈루루에서 학생들이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지구를 지키자는 표어 등을 들어 보이고 있다. 벵갈루루/EPA 연합뉴스
[코즈모폴리턴] 신기섭 |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가난한 나라 아이들의 납 중독만 줄여도 부자 나라 아이들과의 학업 격차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지난달 말 미국의 싱크탱크 ‘글로벌 개발센터’가 내놓은 ‘납 노출을 줄이면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학업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을까’라는 연구논문의 핵심 주장이다.
평소 아프리카 등지 저소득 국가 어린이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납 중독 문제는 생소한 이야기였다. 납 중독은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만 여겼다. 개도국 미래세대를 좀먹는 독소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논문은 1987~2020년 세계에서 발표된 논문 47건(미국 17건, 7개 고소득국 12건, 12개 저소득국 18건)을 취합해 종합분석(메타 분석)했다. 이 가운데 40건은 어린이들의 혈중 납 농도와 지능(아이큐)의 관계를 분석했다. 납 농도와 읽기 또는 수학 실력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도 각각 15건과 14건이었다.(중복 연구 포함) 혈중 납 농도와 인지 검사를 받은 아동들 평균 나이는 각각 4살, 8살이었다.
논문은 가난한 나라 아동들의 평균 혈중 납 농도가 0.1리터당 5.3마이크로그램(㎍)으로 고소득 국가(0.5㎍)의 10배가량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가난한 나라 아동들의 납 농도를 고소득 국가 평균치까지 떨어뜨리면 저소득 국가와 고소득 국가 아동들 학업 격차를 21%까지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나라별 추정치도 제시됐다. 세계은행 ‘인적자본 프로젝트’의 일부로 실시하는 학업점수 평가에서 가장 점수가 낮은 나라들인 콩고민주공화국,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아이티의 경우 620점 만점에 27~32점까지 점수가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세계 평균치인 500점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러시아의 경우도 납 중독이 감소하면 23점 상승할 것으로 분석됐다. 논문은 “혈중 납 농도를 줄이는 건 (건강상의 이점을 빼고도) 아동들의 학습 능력을 개선하는 데 비용 대비 효과가 아주 크다”고 평가했다.
이런 분석을 절대적인 걸로 단정해서는 곤란하지만, 가난한 나라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는 여러 요인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던 것 하나를 부각해줬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크다.
요즘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에는 어려운 나라 아이들을 도와달라는 구호단체들의 광고가 넘쳐난다. 어떤 단체는 깨끗한 물 공급을, 다른 단체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또 다른 단체는 분쟁지역의 참상을 부각시키며 지원을 호소한다. 이런 광고들을 보다 보면 “모두 도와줄 수도 없고…. 아, 답이 없다!” 싶은 무기력감도 든다.
가난한 나라 아이들이 납 중독 탓에 시들어간다는 연구 결과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무기력감만 안겨줄지 모르겠다. 이런 무기력감을 극복하는 최선책은 구체적인 문제 하나에 집중해 확실히 돕는 것이다. 이 연구 발표를 계기로, 가난한 나라 아이들의 납 중독 해결을 돕자고 나서는 이들이 한국에서도 등장한다면 더없이 반가울 것 같다.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