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부터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파이팅(fighting)의 의미가 ‘한국 맥락에서는 격려, 자극, 지원의 뜻도 있다’라고 등재되면서 확실히 파이팅이라는 외래어가 응원구호로 승리를 거둔 것 같다.
경기 현장에서 파이팅 외침이 들리는 것은 예사이고, 스포츠 모임이나 행사의 마무리에 참가자들은 대개 주먹을 쥔 손을 내밀고 파이팅을 외치며 사진을 찍는다. 일상적인 회합에서도 파이팅 세리머니가 열리고, 각종 매체나 드라마, 음악 등에서도 파이팅 구호가 넘친다. 잼버리 대회 참가자들을 격려하는 시민의 구호 가운데 하나가 파이팅이었다.
파이팅 어휘의 정착 과정을 미디어 스포츠를 통해 추적하면, 애초 이 말은 ‘투쟁심’을 뜻하는 영어 ‘파이팅 스피릿’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파이팅 주제어 검색을 하면, 1926년 9월5일치 동아일보 야구 기사에 “첫재로 ‘파이팅 스피리트’가 부족하엿든”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신문에 처음 등장한 이 용어는 해방 전까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40여 기사에서 확인되는데, ‘파이팅 스피릿’이라고 온전한 영어 구절을 그대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930년대 중반부터 기사의 경제성을 위해서인지 ‘파이팅’만 단독으로 쓰는 축약형이 나타났고, 해방 이후 지금까지 스포츠 보도에서 파이팅 스피릿이라는 원본 대신 스피릿이라는 말은 떨어져 나간 채 파이팅만 쓰이고 있다.
파이팅을 대신할 우리말도 그동안 여럿 나왔다. 국립국어원이 일찍이 “아자”를 대체어로 제시했고, 고 백기완 선생은 “아리아리”를 제안한 바 있다. 지난해 프로당구협회(PBA)는 우리말 구호 공모에서 “멋져부러” “대끼리” “으랏차차” “좋~다” 등을 입상작으로 뽑았다.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가즈아!”도 파이팅과 경쟁할 단어다.
콩글리시 파이팅은 문법적으로 진행형이나 동명사형이어서 구호 어법에서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기름을 치라는 의미의 중국 “짜요”(加油)나 끝까지 버티라는 뜻의 일본의 “간바레”(頑張れ)와 달리 전투적인 색채가 강한 것도 사실이다. 스포츠가 아닌 문화·예술 행사에서 자칫 파이팅이 제창된다면 정제되지 못한 느낌을 줄 수 있다.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번듯하고 재치 있는 우리말 응원이 관중석에서 한번이라도 울리면 좋겠다.
김창금 스포츠팀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