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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입시기계가 된 ‘교육자’의 딸

등록 2023-08-14 19:37수정 2023-08-15 02:40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앞에서 한 추모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 학교 교사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앞에서 한 추모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 학교 교사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룸에서] 이주현 | 뉴스총괄

우리 가족은 취업 가능한 성인 남녀 7명 중 3명이 교사였거나 현직 교사다. 부모님은 각각 윤리와 국어를 가르치셨는데 지방 소도시에선 우리 집을 “교육자 집안”이라고 했다. 교육자는 도산 안창호 선생처럼 민족의 선각자 같은 분에게 어울릴 것 같은 말이라, ‘교육자 집안’은 어린 마음에도 부담스러울 만치 무겁게 다가왔다.

얼마 전 고향을 찾았다가, 국어교사였던 어머니 제자를 우연히 만나게 됐다. 30여년 전 40대의 어머니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그분은 엄마와 똑 닮은 40대의 나를 금세 알아봤다. “아이고, 유○○ 선생님 따님이군요!” 이틀 뒤엔 낯선 번호로 문자가 왔다. 친구로부터 유○○ 선생님의 근황을 듣고 너무 반가워서 연락한다면서 이렇게 썼다. “학창 시절 말썽만 피웠는데 선생님의 각별한 은혜로 지금의 작은 제가 있는 것 같아 늘 연락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궁금해 여쭸더니 엄마는 아득한 기억을 더듬었다. “우리 집 근처에서 자취를 하던 애였는데….”

엄마는 조금 뒤 흥분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전화가 왔더라고! 학교 다닐 때 내가 글짓기상을 줬대. 그게 자기가 학창 시절에 받은 유일한 상이었다고 하더라고. 그 상을 평생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살아왔다고 하네. 꼭 찾아뵙고 싶었는데 늦게 연락드려 죄송하다면서.”

그로부터 석달쯤 뒤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가 세상을 등졌다. 고인이 떠났으니 죽음의 원인을 둘러싼 의문부호가 명쾌하게 해소되진 않겠으나, 아이들 간의 다툼, 그로 인한 학부모와의 접촉에서 몹시 힘들어했던 정황은 분명해 보인다. 교사의 죽음 이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증언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수업 도중에 집에 가겠다는 아이를 막아섰더니 커터칼을 꺼내 들었다” “학부모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내가 조폭이다. 길 가다가 칼 맞고 싶냐’고 협박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다리가 부러졌으니 교사가 운전해서 통학시켜달라” 등등. 교실의 붕괴가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었다. 끔찍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동생이 선생 일이 힘들다고 할 때마다 내심 ‘너는 그래도 방학이 있고 연금이 있잖냐’며 넘겼던 일들이 목에 가시 걸린 듯 따가웠다. 새삼 진지하게 물었다. 학교에서 가장 괴로운 일이 뭐냐. 학부모·학생들의 밤늦은 카톡은 차라리 참을 만하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어떤 애가 이어폰을 끼고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어. 지적을 했더니 이어폰은 빼겠지만 수학 공부는 계속하겠다는 거야. ‘선생님 죄송해요. 저는 국어는 잘하는데 수학이 약하거든요.’ 나중에 걔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 우리 애는 수학 공부가 더 중요하니 이해해달라고. 가르친다는 게 뭘까, 자괴감이 밀려왔어. 나는 그저 생기부(학교생활기록부)를 잘 써주는 사람인 건가.”

부모님이 교사로 일할 때와 동생이 교사인 지금, 한국 사회가 기대하는 교사의 역할은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소득 수준이 높은 학부모와 아이들일수록 학교를 대입을 위한 성적 평가 기관으로 보고, 공부는 학원에서 배운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교사에게 배움을 기대하지 않는 대신, 교사는 생활 도우미, 갈등 해결사의 역할을 요구받게 된다. ‘선생님’이 되려고 교대·사대에 갔던 교사들은 모멸감을 느낀다.

근무 지역이 달랐던 몇년 전만 해도 동생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부모님과 소상히 의논하곤 했다. 당시 대화 속엔 태도가 거칠고 공부엔 취미가 없지만 교사의 관심이 중요한 아이들이 등장했다. 결석한 아이를 찾아 한겨울 달동네 산비탈을 올라갔더니 어두컴컴한 방에서 밥도 굶고 게임만 하고 있더라, 담배 피우는 자기 모습을 무단 유포한 범인을 잡겠다며 같이 경찰서에 가달라고 하더니 밤새 술 마시다 뻗어 정작 약속 장소에 못 나왔더라….

그런데 그 사고뭉치들이 가끔 연락을 한다고 했다. “반갑지만 와락 겁이 나기도 해. 얘들이 지금 뭘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해서.” 라일락 봉오리 맺히는 내년 오월이 되면 동생에겐 몇통의 전화가 걸려올 것이다. 그 반갑고도 무서운 전화가 ‘입시기계’로 살며 상처 입은 동생에게 위로가 되기를.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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