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10일 오후 강원 삼척시 새천년도로 주변 파도가 높게 일고 있다. 연합뉴스
오동재 | 기후솔루션 연구원
태풍이나 바람이 많이 불 때 바닷가를 가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파도의 무서움을 모를 수 없다. 해수욕장을 거닐다 들이치는 파도에 바지를 다 적시기도 하고, 심한 파도에는 휩쓸려 버리기도 한다. 방파제를 넘어오는 너울성 파도는 도로마저 휩쓸어버린다.
다른 한편으론, 파도는 잔잔한 바다에 역동성과 생동감을 불어넣는 존재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마다 파도는 계속해서 바위에 부딪히고, 바위를 깎아낸다. 오랜 시간 바위를 깎아낸 파도는 마침내 해안선을 바꾸고, 지형마저 바꿔버린다.
오늘 우리가 겪는 기후위기는 많은 점에서 파도를 닮았다. 직접적으로 해수면 상승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해수면 상승으로 육지를 삼키는 바다는 결국 파도의 형상을 하고 있다. 내륙이라고 다르진 않다. 매년 여름 우리를 위협하는 국지성 호우는 이제 일상이 됐다. 기후위기로 폭우는 평소보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비를 집중적으로 뿌려댄다. 둑을 터뜨려 주택가로 밀려들거나, 지하차도와 주차장으로 들이차는 물결은 파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물이 차오르는 걸 인지할 때쯤이면 피할 수 없다는 점도 파도와 비슷하다. 그렇게 한국의 폭우와 태풍은 올해도 50여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일상이 된 기후위기의 파도는 앞으로 지금보다 더 세게, 자주 우릴 덮쳐올 것이다.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 세계는 온실가스 배출 최고치를 갱신하며, 또 다시 막대한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집어넣었다. 얼른 배출 정점을 찍고 감축을 시작해야 함에도, 석유·가스 산업은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신규 유·가스전 탐사를 시작하며 우리의 화석연료 의존도를 되레 늘리는 모순적인 결정을 하고 있다. 더욱 세질 기후위기의 파고를 담당하는 몫은 내 조카 세대의 몫이다. 당신이 나처럼 청년 세대라면, 당신의 앞으로의 생과 노후에도 평안을 빈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파도가 있다. 기후변화 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지는 힘이다. ‘기후위기 대응’이라고 불러볼 수 있겠다. 이 파도는 바위보다 단단히 구축된 화석연료 문명의 관성을 깎아내고, 과학자들이 권고한 감축 경로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힘이다.
이 파도의 중심은 그레타 툰베리 같은 소녀나 환경운동가가 아니다. 영웅적인 기후·에너지 전문가도 아니다. 이 파도는 당신이 함께할 때 비로소 넓어지고, 강해진다. 당신은 청소년, 학생, 청년, 부모, 관료, K-직장인, 문화예술인, 취준생, 투자자, 종교인, 유튜버, 정치인 등 그 누구도 될 수 있다. 비관적인 현실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부딪치려는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이는 단순히 일회용컵 줄이기 같은 개인 실천을 넘어서, 화석연료 산업과 정부의 변화를 요구하고 만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미 우린 그 파도가 만든 변화 속을 살고 있다. 3년 전, 시민들의 의지가 모여 결국 한국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을 만들어냈다. 전 세계에서 마지막까지 해외 석탄발전 사업을 수출했던 한·중·일의 석탄 투자 중단 선언도 뒤따랐다. 이 선언은 결국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석탄 의존을 끝내며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과학은 여전히 더 많고 강한 파도들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앞으로 이 파도들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무릎까지 차오르며 우릴 위협하는 기후위기의 오늘, 그런데도 위기를 늦추기보단 가속 페달을 밟는 화석연료 산업의 관성을 얘기하고자 한다. 다른 한편으론,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응집하는 또 다른 파도를, 결국은 화석연료 문명이 쌓아온 관성을 깨뜨릴 힘들을 말하고자 한다. 두 선택지 중, 두 번째 파도 속에서 이 글을 읽는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