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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망가져 가는 국정원을 되살려야 한다 [성한용 칼럼]

등록 2023-08-09 18:34수정 2023-08-10 02:15

정보기관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다. 유능한 정보 요원 한 사람 키우는 데 상당한 비용과 세월이 들어간다. 탕평 인사를 해야 한다. 이제 정치권력이 정보기관에서 손을 뗄 때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시작하면 좋겠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6월 교체한 국정원 원훈이 국정원 본부 건물 앞에 서있다. 지난 1961년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지은 것이다. 국정원은 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 원훈을 교체한 이후,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잇따라 원훈을 교체해왔고, 윤석열 정부 취임 후 처음 원훈으로 돌아갔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6월 교체한 국정원 원훈이 국정원 본부 건물 앞에 서있다. 지난 1961년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지은 것이다. 국정원은 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 원훈을 교체한 이후,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잇따라 원훈을 교체해왔고, 윤석열 정부 취임 후 처음 원훈으로 돌아갔다. 연합뉴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정치부 선임기자
국가정보원의 과거는 어두웠다. 출발부터 비정상이었다. 1961년 박정희 소장의 5·16 쿠데타 사흘 뒤 혁명위원회는 중앙정보부가 포함된 통치 체제 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를 대신해서 입법부 역할을 했던 국가재건최고회의가 5월31일 중앙정보부법을 의결했다.

중앙정보부장, 지부장, 수사관은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는 수사권을 가졌다. 업무 수행에 필요한 협조와 지원을 모든 국가기관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쿠데타로 장악한 정권을 지키기 위해 무소불위의 괴물을 만든 것이다.

중앙정보부는 공화당 창당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증권 파동, 워커힐 사건, 파친코 사건, 새나라자동차 사건 등 4대 의혹 사건을 일으켰다. 민심이 악화하자 1963년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김종필 부장은 먼 훗날 이렇게 변명했다.

“국가 개조라는 큰일을 이루려면 악역도 필요하다. 혁명 정신, 궐기의 뜻을 아는 사람이 그 일을 주도해야 한다.”

“정보부에 수사권을 한시적으로 부여할 계획이었다. 정보부가 수사권을 쥐면 미국의 시아이에이와 에프비아이의 권한을 모두 갖게 된다. 그런 예외는 혁명정부에서만 유효해야 했다.”

“후임 부장들 일부는 정보부의 기본 임무와 역할을 망각했다. 정치적 상황에 편승해 때로는 월권과 남용으로 국민의 지탄과 원성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나는 정보부 창설자로서 그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랬다. 중앙정보부(중정)는 정말 무서웠다.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쳤다. 검찰, 경찰은 중정의 시녀에 불과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1971년 대선에서 맞붙었던 김대중 후보를 1973년 일본에서 납치해 바다에 빠뜨려 죽이려고 했다. 최종길 서울대 교수가 중정에서 조사받다가 죽었다. 재일교포 유학생, 납북 어민 등 무고한 수많은 사람을 간첩으로 몰았다.

중정은 1981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됐다. 안기부의 악행도 중정에 못지않았다. 중정과 안기부는 공작 정치의 소굴이었다. 매수, 협박, 도청, 감시, 구속, 고문, 납치를 일삼았다.

안기부는 1987년 6월항쟁, 1993년 문민정부 출범, 1997년 정권교체를 겪으며 조금씩 달라졌다. 국내 정치에서 차츰 손을 뗐다.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수사권도 점차 축소했다. 마침내 내년 1월에는 수사권이 경찰로 완전히 넘어간다. 정보기관으로서 본연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정권 교체에 휘둘린 후유증이 너무 컸다. 김대중 정부는 구조조정을 했다. 400여명을 명예퇴직과 직권면직으로 내보냈다. 일부 직원들은 소송까지 냈다.

이명박 정부의 원세훈 원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잘나가던 호남과 부산·경남 출신들을 지방으로 좌천시키거나 특별정신교육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서훈 원장은 적폐청산 차원에서 1급을 전원 교체했다.

그리고 5년 뒤 윤석열 정부에서 김규현 원장은 1급 부서장 27명 전원을 대기발령했다. 2·3·4급 직원들을 200명 가까이 대기발령하거나 해외 한직으로 보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잘나가거나 승진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정권에 줄을 댔던 직원 몇 사람의 농단이 파장을 키웠다.

1997년 이후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인사 태풍의 강도가 계속 두 배로 강해지고 있다는 게 내부 직원들의 증언이다. 이제는 중요한 보직을 맡지 않으려는 풍조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번 정권’에서 잘나가면 ‘다음 정권’에서 불이익을 당할 것이 두려운 것이다.

이런데도 국정원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없다. 국정원은 대북 휴민트(인적 정보)와 사이버 안보에서 탁월한 역량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쌓은 노하우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1년 동안 별로 한 일이 없다. 문재인 정부 청산과 세 차례 인사 파동이 있었을 뿐이다. 국정원은 지금 심하게 망가져 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국정원은 경제 정보 활동을 강화했다. ‘산업 경제 정보 유출, 해외 연계 경제 질서 교란 및 방위산업 침해에 대한 방첩’으로 직무를 제한한 국정원법 위반 소지가 있다. 자제해야 한다. 혹시라도 수사권을 되찾으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수사권을 다시 가지면 괴물로 돌아간다.

정보기관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다. 유능한 정보 요원 한 사람 키우는 데 상당한 비용과 세월이 들어간다. 탕평 인사를 해야 한다. 이제 정치권력이 정보기관에서 손을 뗄 때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시작하면 좋겠다. 결단을 기대한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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