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링크플레이션’은 줄어든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제안한 용어로, 고물가 상황에서 가격을 인상하는 대신 용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춰 간접적으로 가격 인상의 효과를 거두는 마케팅 기법을 뜻한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가격 인상엔 민감하지만, 용량 차이는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용하는 일종의 ‘꼼수’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일부 제과업체가 과자의 양은 줄이고 포장지에 넣는 질소의 양을 늘리는 방식으로 눈속임했던 ‘질소 과자’가 슈링크플레이션의 대표 사례로 지목됐다. ‘질소를 샀더니 과자를 덤으로 준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했다. 급기야 2014년 9월엔 대학생 3명이 이에 대한 항의로 과자봉지 150여개를 엮은 뗏목을 만들어 타고 한강을 건너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최근에도 일부 식품·제과업체가 가격은 유지하되, 용량이나 품질을 낮추는 편법을 써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유명 주스 브랜드 델몬트는 제품의 과즙 함량을 최고 35%까지 줄였다. 과즙 100%로 만들던 오렌지주스는 80%로, 80%였던 주스는 45%로 낮추는 방법을 택했다. 해태제과는 편의점에서 파는 만두의 중량을 최대 16% 줄였으며, 동원에프앤비(F&B)도 100g짜리 참치캔을 90g으로 줄였다. 앞서 젤리 시장 국내 1위인 하리보 역시 기존 100g이던 젤리를 80g으로 20% 줄이기로 했다. 오비맥주는 카스 묶음팩 중 375㎖ 번들 제품 용량을 5㎖씩 줄였다. 이들 업체는 모두 “원가 상승 부담”을 이유로 내세웠다.
기업의 고충도 아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나선 정부 압박에 못 이겨 지난달 라면·제빵·제과업계가 줄줄이 가격을 인하하고 나선 터라 대놓고 가격을 올렸다간 미운털이 박힐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은근슬쩍 양을 줄인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 전까지 사전 공지를 하는 ‘최소한의 상도덕’마저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신뢰는 기업 평판의 주춧돌이다. 꼼수로 얻은 단기간의 이윤이 그것이 들통나 잃게 될 소비자의 신뢰보다 크다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건 똑똑하고 부지런한 소비자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선희 경제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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