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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될까

등록 2023-08-06 18:03수정 2023-08-07 02:07

지난해 5월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말고] 김유빈 |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이사

몇해 전 서울에 올라간 남동생의 생활이 걱정된다며 엄마는 김치와 반찬을 바리바리 싸 들고 광주에서 서울까지, 꼬박 4시간을 달려갔다. 달려간 시간에 반비례하게 엄마는 동생의 3평 남짓 고시원 같은 방에서 한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일어섰다. 끊임없이 괜찮냐고 물어보는 엄마에게 동생은 이제 적응돼서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다시 광주로 돌아오는 4시간, 차 안에서 엄마는 내내 울었다. 서울에 마땅한 집을 구해줄 수도, 내려와서 살아보자고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전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졸업여행을 떠난다는 청년과 친해져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지역에서 일한다는 내게 그는 졸업하고 바로 서울로 가야 하는지, 혹여 이 시기를 놓치면 늦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털어놨다. 나는 지역에도 분명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도전은 언제든 할 수 있다 답했지만 사실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중에 조심스레 물어본 그의 나이 고작 23살이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속뜻이 있는 속담이지만 그 ‘목적’이 ‘서울’이라는 점에서 나는 이 속담이 다르게 읽힌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서울은 말 그대로 목적 그 자체였다. 서울권 대학에 진학해야만 성공한다고 여기고 또한 그렇게 배워왔다. 지금은 지양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만 2010년대까지도 수능 이후엔 얼마나 많은 학생을 서울권 대학에 보냈는지 경쟁하듯 대학과 학생 이름을 적은 현수막이 고등학교 정문에 걸리곤 했었다. 그렇게 현수막 가득 이름을 써넣을 수 있는 학교가 소위 ‘좋은 학교’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정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여겼던 사람이 누구였을지 생각하게 된다.

서울권 대학에 진학해서 ‘성공’했을 때 현실은 어떤가. 모든 지역민이 그렇지 않겠지만 경제력이 달리는 상당수는 기본적인 의식주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이 경우 심리적인 문제는 물론 부족한 관계 형성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말 싫어하는 이야기이지만, 보호자에 따른 수저 논쟁이 지역에 따라서도 그 색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그 이후는 또 어떻게 될 것인가. 수도권 인구 과밀화 이 문제 하나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굉장히 오랜 시간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도 해결을 위한 노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미 서울에 입성한 지역 청년들 상황을 알면서도 ‘그래도 인서울’이라고 말하는 교육이 문제일까, 시간이 멈춘 채로 유지되다 결국 낙후돼버린 지역 상황이 문제일까, 철학 없는 지역정치가 문제일까, 실효성 없는 청년정책이 문제일까, 사회시스템의 문제로 야기되는 청년의 언행을 엠제트(MZ) 세대타령으로 치부하는 사회가 문제일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함께 고쳐나가자고 말하기 어렵다.

나 역시 청년의 서울 집중을 해결할 방법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지역에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실질적인 장치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일자리와 안정적인 소득은 물론 접근성 높은 문화 인프라 등 함께 나누고 즐길 수 있는 공공시설과 공동체 내에서 삶이 가치로울 수 있는 정서적 의미가 필요하다.

이 글을 쓰면서도 첫 문단에 우리 엄마가 왜 울었는지 공감하지 못하는 분이 있지는 않나 고민된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가는 사회가 조금 슬퍼 나 역시 울 것 같지만, 모두 치열하게 사는 세상에서 누구나 원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전한다. 같은 길을 걷더라도 내가 선택한 것이냐 아니냐는 삶의 주체성을 잴 척도가 될 것이다. 지역에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 청년에게 가치로운 또한 자기 삶을 살아갈 다양한 기회를 주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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