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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석기의 과학풍경] 남자는 수렵인 여자는 채취인?

등록 2023-08-01 19:06수정 2023-08-02 02:05

수렵채집 사회라고 하면 남자는 사냥을 나서고 여자는 아이들과 열매를 따고 뿌리를 캐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민족지학 기록을 분석한 결과 많은 사회에서 여성도 사냥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필리핀 아그타족 여성의 사냥 장면이다. 토론토대 제공
수렵채집 사회라고 하면 남자는 사냥을 나서고 여자는 아이들과 열매를 따고 뿌리를 캐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민족지학 기록을 분석한 결과 많은 사회에서 여성도 사냥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필리핀 아그타족 여성의 사냥 장면이다. 토론토대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얼마 전 이탈리아 하원에서 입법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한 의원이 생후 3개월 된 아들에게 모유 수유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이탈리아 의회에서 처음 있는 일로, 주변 의원들의 ‘초당적’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이번 주(8월1~7일)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가 지정한 ‘세계 모유 수유 주간’이다. 이런 주간까지 만들었다는 건 그만큼 모유 수유 비율이 낮다는 뜻이다. 이런 배경에는 엄마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모유 수유하는 걸 꺼리게 하는 오늘날 문화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미국 작가 플로렌스 윌리엄스는 저서 ‘가슴 이야기’에서 “젖가슴을 성적 대상으로 지나치게 부각해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잘못된 이미지를 갖게 한 결과, 모유 수유를 하도록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고 썼다. 그리고 이런 편견이 사회에 자리잡는 데 과학도 한몫했다는 것이다. 1967년 출간된 영국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 없는 원숭이’가 대표적인 예다.

이 책에서 모리스는 사람의 젖가슴은 수유 기관을 넘어, 직립으로 보이지 않게 된 “살집이 있는 양 볼기짝을 대신한” 성적 기관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과거 수렵채집인 시절 사냥감을 쫓아다니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남자들이 화덕 주위 여자들의 젖가슴을 보는 걸 낙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학술지 ‘플로스 원’에는 모리스 가설의 전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논문이 실렸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남자는 수렵을 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채집을 하는 역할 분담을 했다는 설정은 남녀 몸 차이를 바탕으로 유추한 몇몇 학자들의 생각이고, 이걸 언론과 대중이 별 의문 없이 받아들인 것이지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시애틀퍼시픽대 생물학과 연구자들은 세계 각지의 사회에 대한 민족지학 보고서를 모아놓은 데이터베이스(D-PLACE)에서 수렵채집 사회 63곳을 골라 기록을 꼼꼼히 분석했다. 그 결과 79%에 해당하는 50개 사회에서 여성도 사냥을 했다는 기록을 확인했다.

사냥감의 크기를 봐도 여성이 사냥에 참여한 경우는 영양처럼 대형 동물을 표적으로 삼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여성들은 활뿐 아니라 칼, 그물 등 다양한 도구를 써서 사냥했다. 또 개나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사냥하기도 한다. 논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렵채집인으로 생활하는 몇몇 사회에서 여성들이 사냥하는 모습도 묘사하고 있다.

사실 여성의 신체 능력이 남성보다 떨어지는 건 상대적일 뿐, 사냥 능력 여부를 가를 만큼 결정적인 건 아니고 훈련과 경험으로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훈련받은 여성의 능력은 보통 남성 평균을 한참 웃돈다.

지금은 이탈리아 의원의 공개 모유 수유 장면을 별일이라며 보지만, 100년 전 우리나라에 온 서양 선교사들은 아무 데서나 가슴을 내놓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우리나라 여성들을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겼다. 우리가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어쩌면 지엽적이고 특이한 현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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