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개봉한 영화 ‘밀수’는 가상의 바닷가 마을에서 해녀들이 밀수판에 휩쓸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제작사 부사장이 전북 군산의 한 박물관에서 ‘1970년대, 해녀들이 밀수에 가담했다’는 짧은 기록을 접한 것이 제작의 단초가 됐다고 한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은 밀수·도벌(불법 벌채)·탈세·폭력·마약을 ‘5대 사회악’으로 규정해 집중 단속을 벌였다. 이 가운데 밀수는 가장 악질적인 범죄로 꼽혔다. “망국적인 사치와 허영심을 조장시키며, 국가 경제를 파탄시키는 가장 악질적인 범죄 행위”(국가기록원 영상 자료)라는 이유다. 하지만 당시 밀수는 국내에 부족한 물품을 조달하는 방편으로 자리 잡았고, 주된 유통 경로인 부산 국제시장과 서울 남대문 ‘도깨비시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1950~60년대에는 우산, 재봉틀, 화장품 등 생필품이 밀수 대상이었다면, 고도성장기인 1970년대엔 텔레비전, 양복 옷감부터 고급 시계, 금괴, 밍크코트, 다이아몬드 등 사치품으로 영역이 확대됐다. 단속이 강화될수록, 밀수 방식도 진화했다. 1960년대 중반까지 부산, 전남 여수 등 남해안 일대에선 소형 쾌속선에 밀수품을 옮겨 실어 반입하는 이른바 ‘특공대 밀수’가 대세였다. 1970년대는 수출면장 없이 현지에서 바로 외국으로 출항할 수 있는 활선어선, 한-일 간을 왕래하는 부관페리호 등이 밀수에 동원됐다. 이들은 해상 접선 대신 밀수품을 육지와 가까운 바닷속에 빠뜨린 다음, 해녀가 몰래 인양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밀수품 운반에 나선 해녀들을 당시 언론에선 ‘해녀밀수특공대’라고 불렀다. 1975년 12월27일치 동아일보는 “부산항을 무대로 밀수를 해 온 제주 출신 해녀와 그 친척들로 조직된 청학동 해녀밀수특공대를 적발”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일제 텔레비전 100대를 비롯해 1970년부터 5년 동안 모두 5억원어치를 밀수했다고 한다. 1975년 9월8일치 중앙일보에도 부산 앞바다에서 “해녀로 구성된 여자 해상밀수특공대 4명이 일제 양장지 1천5백m, 티브이(TV) 10대 등 12종류 시가 2천만원 상당의 밀수품을 운반”하다 검거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동시에 해녀들은 세관에 고용되어 밀수범들이 바다 깊숙이 숨겨놓은 밀수품을 찾아내는 감시자 역할도 수행했다고 한다. 밀수의 시대, 해녀의 재발견이다.
최혜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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