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상면이 먼저 읽고 그리다.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경북 울진, 전남 보성 등 여러 지역에서 청년 나이 기준을 40대 후반까지로 상향 조정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제 만 나이 통일법이 적용돼 한두살씩 어려졌으니, 나는 아직 새파란 청춘이다. 참고로 내 나이는 만 46세다. 그러니 30대 중반인 분들은 아직 소년, 소녀라고 우겨보자.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40대 중반은 아저씨를 지나 어르신으로 여겨지곤 했다. 그런데 이제 40대 후반까지 청년이라니,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낸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요즘은 자랑할 거리가 점점 줄어들어 사소한 일에도 스스로 칭찬해 주고 엄지를 척 올려준다. 예를 들어 할 일이 태산 같은데 낮잠을 자버렸다면, “낮잠 성공! 역시 난 대단해.”라고 스스로를 추켜세운다. 누군가 “정신승리하고 자빠졌네!”라고 비아냥거린다면, “정신승리도 못 해본 것이”라고 속으로 받아쳐 보자. ‘정신승리’라는 말에는 상황과 삶을 긍정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바쁜 와중에 낮잠을 자버렸는데, 무를 수도 없고 후회해 봤자 무슨 소용이랴! “좀더 효율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위해 ‘낮잠테크’한 내 몸의 오토매커니즘이 정말 대단한걸!”이라고 말해 보자.
지역마다 청년의 나이가 다르다. ‘나 아직 청년 할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청년으로 대해주는 곳으로 가면 된다. 사실 청년의 기준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굳이 삶의 터전을 바꾸지 않아도, 그저 내 자아의 영역에서 ‘나는 내가 청년 하고 싶을 때까지 청년이다’고 규정지으면 된다. 누구에게 우길 필요도 없다. 누군가 빈정거려도 나의 자아에까지 들어올 수 없다.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일단 의심해 봐야 한다. 천동설이 지동설이 되고, 중년이 청년이 된다.
우리 인생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 결코 늦은 것은 없다. 늦었다고 누가 정해 놓는 건가? 늦었다는 것도 항상 바뀔 테니, 하고 싶은 것을 지금 시작하자. 늦었다고 망설일 에너지를 새로운 도약의 설렘으로 바꿔보자. “어렸을 때 피아노 좀 제대로 배워볼 걸”하며 후회하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님은 충분히 어리십니다. 지금 시작하십시오”라고 말해주고 싶다. “젊었을 때 머리카락도 총천연색으로 물들이고 다닐 걸”이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께 “아직 청춘이십니다. 머지않아 법적으로 60세까지 청년으로 상향 조정될지 몰라요. 얼른 미용실 다녀오세요”라고 얘기할 것이다.
얼마 전 크라잉넛 전국투어 콘서트 다음날 부산에서 일본어능력시험(JLPT)을 보고 왔다. 가장 쉬운 등급을 신청해서 떨어지면 창피할까 사람들에게 얘기도 별로 안 했는데, 생각해 보니 창피할 것도 없었다. 떨어질까봐 시도도 안하는 게 창피한 거 아닌가? 오랜만에 고등학교의 교정을 걸으니 푸른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시험시간이 다가오니 살짝 긴장됐다. 이게 뭐라고. 입시도 아닌데. 그런데 그런 긴장감이 상처에 소독약 바르듯이 마음의 어두운 부분을 살균하는 느낌을 받았다. 건강한 긴장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청춘의 열쇠 아닐까. 주변에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도 많았다. 모두가 비슷한 설레는 감정을 가졌으리라. 우리 모두에게 청춘의 아우라 같은 것이 맴돌고 있었다.
악기, 언어, 춤, 독서, 사업, 연애, 마라톤, 봉사활동, 기부 등 뭐든 지금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청춘이니까. 어쩌면 우리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 기회의 땅이 열리는지도 모르겠다. 그 도약의 첫 발걸음이 시작됐을 때 다시 청춘은 시작된다. 설령 씨앗을 뿌렸는데,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더라도 씨앗을 심는 자체가 향기로운 일이다. 그 모습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열매를 맺을 수도 있으니까.
앞에 써놓은 글을 쭉 읽어보니, ‘청년’이니 ‘만 나이’니 참 말장난 같다. 사실 바뀐 것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우리 집 앞에 220살 된 보호수인 회화나무가 있는데, 아옹다옹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며 반가사유상처럼 엷은 미소를 짓는 것만 같다. 7월 말이면 수많은 연둣빛 회화나무 꽃잎들이 올림픽 다이빙 금메달리스트처럼 87회전 10점 만점의 연기를 펼치며 우아하게 떨어진다. 술이라도 한잔 걸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달빛에 비친 회화나무 꽃잎들은 마치 여름 벚꽃 비처럼 내리며 내게 속삭인다. “청년이여! 다시 한번 기회의 땅으로 달려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