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소강 상태에 접어든 지난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에 흙탕물이 흐르고 있다. 김정효 기자
윤지로 |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 ㈔넥스트 미디어총괄
기상청이 올여름 ‘극한호우’라는 용어를 선보였을 때 언어의 그릇을 떠올렸다. 이렇게 자꾸 새 언어를 찍어내다 담아둘 새도 없이 넘쳐 흐르면 어쩌지…. 이미 기후변화의 영향반경 안에 들어왔는데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과거처럼 오늘을 살고, 오늘처럼 내일을 준비한다. 언어의 수위는 꾸준히 올라오는데 정부와 정치권의 인식 수준은 저 바닥을 헤매고 있다.
새로운 단어의 등장에는 대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기후변화를 일컫는 용어는 지식의 확장과 궤를 같이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 과학사학자인 에릭 콘웨이에 따르면 1970년대만 해도 학자들은 ‘의도하지 않은 기후변경’이라는 모호한 단어를 썼다. 인간이 뿜은 먼지의 냉각효과와 온실가스의 온실효과 중 뭐가 더 셀지 알 수 없었던 탓이다. 1979년 미 국립과학원에서 이산화탄소와 기후의 관계를 밝힌 일명 ‘차니 리포트’를 낸 뒤에야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라는 단어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 두 단어로 교토의정서(1997년)를 지나 파리협정(2015년)까지 왔다.
언어와 인식 사이 틈이 보이기 시작한 건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다. 2019년을 전후로 그레타 툰베리와 멸종저항 운동 등 기후행동이 번지자 영국 일간 <가디언>은 기후변화 대신 ‘기후비상·위기·붕괴’를, 지구온난화 대신 ‘지구가열’을 더 많이 쓰겠노라 밝혔다. 한국 언론도 이제는 지구온난화보단 기후위기라는 말을 4~5배는 더 많이 쓴다. 그래서 달라졌을까.
기후변화의 병증이 깊어지면서 장마와 태풍, 가뭄, 더위는 역대 최장·최악·최고의 수식어를 달고 찾아온다. 하지만 54일이나 됐던 장마의 기억은 품귀현상을 빚던 토마토가 다시 햄버거 속으로 돌아올 때쯤 흐려졌고, ‘다시는 이런 물난리 겪지 말자’던 1년 전 약속도 이제 보니 말뿐이었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널리 쓰인 최근 몇년을 복기해보자. 재생에너지 목표를 늘렸다 줄이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기 어려운 고무줄 에너지정책을 펴더니 탄소 다배출 업종의 감축 부담은 ‘비현실적이라’ 덜어주고, 아직 실체가 불분명한 탄소포집저장(CCS)에 그 몫을 넘겼다. 국회도 도긴개긴이다. 지난해 말 설치된 국회 기후위기특위는 활동기간 종료를 넉달 앞두고 이제 겨우 민간자문단을 꾸렸다. 구체적인 안건은 ‘이제부터’ 정할 참이다.
이번 수해를 당하고도 우리는 과거처럼 오늘을 살고, 오늘처럼 내일을 준비한다. 탄소중립기본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후재난 대책을 마련하도록 의무화했는데 과연 그러고 있는가? ‘이게 다 앞 정부의 물관리 일원화’ 때문이라며 정부조직법으로 물타기 하고, 국회는 묵혀 둔 호우대책 법안 21건을 이제야 처리하겠단다. 이 와중에 4대강 감사 결과까지 나왔다. 이번이 벌써 다섯번째니 이쯤 되면 감사라기보단 푸닥거리 아닌지.
우리의 느슨한 대응은 시장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빗줄기처럼 흘러내리던 우리나라 배출권 가격은 호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지난 14일부터 급기야 1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90유로(약 13만원)를 호가하는 유럽에 비하면 땡처리 수준이다.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는 선에서 우리가 배출할 수 있는 남은 탄소배출량을 ‘탄소예산’이라고 한다. 어쩌면 언어에도 예산이 있을지 모른다. 기후위기, 기후비상이라는 단어가 주었던 긴박감은 결국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이 말들이 품었던 의미는 점차 축소돼 바닥나고 말 것이다. 그 다음엔 어떤 말을 써야 하나. 또 그럴 수록 퇴행하는 기후정책과 언어 사이의 확대되는 괴리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이다. 어떤 신조어도 곧 클리셰가 될까 봐, 어떤 말에도 꿈쩍하지 않을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