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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폭염에 쓰러지지 않도록, 다시 쓰는 당신의 노동권

등록 2023-07-23 14:24수정 2023-07-23 18:50

[아침햇발]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황보연 | 논설위원

미국계 대형마트 코스트코 코리아 누리집을 보면, 코스트코는 ‘쾌적하고 안전한 일터를 보장한다’고 나와 있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6월19일, 코스트코 하남점 주차장에서 일하다가 숨진 20대 노동자 ㄱ씨도 입사 지원 때 이 문구를 봤을 것이다. 그러나 ㄱ씨가 마주한 현실은 쾌적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았다. 그가 폭염에 쓰러지지 않았으려면, 어떤 조처가 필요했던 걸까.

2019년 입사한 ㄱ씨는 계산 업무를 하다가 6월5일부터 쇼핑카트 관리로 배치됐다. 주차장에서 고객들이 가져다 놓은 카트를 수거해 정리하는 일이었다. 폭염에 노출되기 쉬운 신규 배치자는 고령자·기저질환자와 같이 ‘온열질환 민감군’으로 분류된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 분석을 보면, 고온환경에서 노동자 산재사망의 4분의 3 정도가 업무 투입 3일 이내에 발생했다. 고열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는 신입일수록 위험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고용노동부령)은 노동자를 고열작업에 새로 배치할 때 매일 단계적으로 작업시간을 늘리도록 하고 있다. 특히 올해 여름 무더위는 유난히 일찍부터 기승을 부렸다. 온열질환 첫 사망자가 지난해엔 7월1일 발생했지만, 올해는 그보다 훨씬 이른 5월21일에 발견됐다. 코스트코가 ‘안전한 일터’를 만들려고 했다면, 적어도 2주간의 ‘고열순응 계획’을 짰어야 했다.

ㄱ씨가 숨지기 이틀 전 걸음걸이 기록. <CBS> ‘김현정의 뉴스쇼’ 갈무리.
ㄱ씨가 숨지기 이틀 전 걸음걸이 기록. <CBS> ‘김현정의 뉴스쇼’ 갈무리.

하지만 ㄱ씨는 곧바로 과중한 업무에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새 업무를 맡은 지 불과 10여일이 지난 뒤 쓰러지고 말았다. 코스트코 노조에 따르면, 하남점의 카트관리 인력은 매출 규모와 매장 구조가 비슷한 다른 점포보다 6명가량이나 적었다. 주차장 한개층에서 매시간 나오는 카트는 200개에 달한다. 장시간 카트를 밀고 다닌 그의 만보기에는 사망 당일 17㎞, 이틀 전에는 26㎞가 찍혀 있었다. 코스트코는 취업규칙에서 안전을 위해 한번에 카트 6대 이상 끌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하남점은 관행적으로 20대 이상 끌었다고 한다. 물체를 들거나 밀면서 걸어다니는 일은 시간당 200~350㎉가 소모되는 ‘중등작업’에 해당하는데 ㄱ씨가 한 일은 그보다 높은 강도였을 수 있다.

무엇보다 ㄱ씨에게는 충분한 휴식시간과 그늘, 물이 제공됐어야 했다. 인간의 체온은 37도 안팎에서 유지되어야 하며, 여기에서 약간의 차이만 견뎌낼 수 있다. 체온은 무더위와 같은 고온환경과 신체활동으로 내부에서 발생하는 신진대사열,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올라간다. ‘온열에 의한 과도한 탈수 및 폐색전증’으로 숨진 ㄱ씨가 일하던 주차장은 벽면이 뚫려 있어 외부 열기가 그대로 들어왔다. 높은 수준의 작업강도로 인한 신진대사열에 자동차가 뿜어내는 열기까지 더해졌다. 그날 하남시의 최고 기온은 34도였고, 이틀째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노동부의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을 보면, 폭염주의보가 내려지면 매시간 10분씩 그늘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온열질환 민감군이나 작업강도가 높은 작업자에게는 휴식시간을 추가로 배정해야 하며, 가장 더운 오후 2~5시에는 옥외작업을 단축하거나 작업시간대를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ㄱ씨는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 그 어떤 배려도 받지 못했다. 코스트코 취업규칙상 휴식시간은 4시간마다 15분만 주어진다. 주차장 1층에서 일하는 ㄱ씨가 5층 휴게실로 가려면 왕복 8~9분 정도가 걸린다. 그가 주차장 한켠에 쪼그리고 앉아 쉬고 말았던 이유다. 열기를 식힐 냉방장치는 물론이고 공기순환장치도 절전을 이유로 꺼져있을 때가 많았다. 폭염에는 시원한 물을 수시로 마셔야 하지만, 5층 휴게실에만 비치돼 있었다.

이미 사망 전날 위험신호를 감지했지만 ㄱ씨는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는 가족이 모인 단체대화방에서 가슴통증과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했지만 바로 휴가를 낼 수도 없었다. 사망 당일에도 ㄱ씨는 다른 층에서 일하는 동료에게 호흡이 힘들다고 연락을 취했지만 바로 도움을 얻진 못했다. 동료끼리 짝을 이루어 서로의 응급 상황을 관찰하는 ‘버디 시스템’(Buddy System·미 산업안전보건청)이라도 구축되어 있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ㄱ씨가 사망 하루 전 가족에게 보낸 메시지. &lt;CBS&gt; ‘김현정의 뉴스쇼’ 갈무리.
ㄱ씨가 사망 하루 전 가족에게 보낸 메시지. <CBS> ‘김현정의 뉴스쇼’ 갈무리.

산업안전보건법 52조는 노동자가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급박한 위험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노사 간 합의된 기준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한 법조항이다. 일부 사업장에선 노동자의 작업중지 요청 이후 회사 쪽이 그로 인한 손실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고 있는 지경이다. 폭염에 대비하기 위한 작업장 기본수칙도 권고사항에 그치기 때문에 사용자가 안 지키면 강제할 도리가 없다. 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에서 정하고 있는 ‘고열작업’도 용광로와 가열로, 갱내 등 열처리 작업이 가시적으로 보이는 특정 장소로 좁혀져 있다. ‘그밖에 노동부 장관이 인정하는 장소’도 포함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노동계에선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으로 본다.

전 세계적으로 올해가 역대 가장 뜨거운 여름이 될 것이란 관측이 쏟아진다. 기후위기가 진행될수록 폭염으로 인한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2050년까지 폭염 발생 빈도는 2~6배 증가한다고 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보고서(2019)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가운데 건설현장 등 옥외에서 일하는 이들(운송 포함)은 14.1%로 추정된다. 4만6천명에 대한 별도의 근로환경 조사에서 근무시간의 절반 이상 고온에 노출되는 노동자가 14.7%에 달했다. 온열질환자가 실내 작업장에서도 나오고 있다는 점(2022년 발생 장소의 8.1%)을 감안하면 폭염 영향권에 있는 노동자가 적지 않은 셈이다.

언제나 위험은 취약계층을 먼저 덮치기 마련이다. 지난해 온열질환자 1564명 가운데 단순노무 종사자가 395명으로 가장 높은 비중이었다. 뜨거워진 지구에 따른 일자리 감소 영향도 취약계층이 떠안게 된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이유다.

민주노총 마트산업노조가 지난 3일 노동부 서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스트코의 중대재해 사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보호조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마트산업노조 제공.
민주노총 마트산업노조가 지난 3일 노동부 서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스트코의 중대재해 사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보호조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마트산업노조 제공.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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