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만 | <코인데스크 코리아> 부편집장
‘블랙록’은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다. 총운용자산이 10조달러(약 1경3천조원)에 달한다. 블랙록이 최근 미국 금융당국에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을 신청하면서 가상자산(암호화폐)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이 펀드 출시를 승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블랙록의 상장지수펀드 신청 성공률은 99%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신청한 576건 가운데 단 1건을 제외하고 모두 승인을 따냈다. 블랙록이 움직이자 피델리티, 위즈덤트리, 반에크 등 미국 대형 자산운용사들도 연이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 신청에 합류했다.
상장지수펀드는 시장지수나 업종, 채권, 원자재 등 다양한 자산과 연동돼 가격이 오르내리는 금융 상품이다. 개별 상품에 직접 투자하지 않고도 주식시장에서 언제든지 원하는 가격에 매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가 출시된다면 개인투자자들은 기관투자자를 통해 비트코인에 간접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는 현물이 아닌 선물 기반이었다. 비트코인을 직접 사는 게 아니라 미래의 특정 날짜에 미리 약정된 가격으로 비트코인을 사거나 팔 수 있는 선물 계약을 추종하는 상품이다. 현물 비트코인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현물 상장지수펀드 승인 신청은 2013년부터 수차례 시도됐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2021년에 세계 첫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가 상장됐다. ‘퍼포스 인베스트’에서 운용 중인 상품에는 1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가 있다. 이 회사가 보유 중인 비트코인은 2만7700여개에 달한다.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가 출시된다면 파급력은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한다. 일각에서는 2003년 출시된 ‘금 상장지수펀드’와 비교하기도 한다. 20년간 횡보하던 금 가격은 상장지수펀드 출시 이후 지속해서 상승했다. 이를 계기로 금 투자가 대중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트코인도 비슷한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미국 금융당국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의 승인 시기는 불확실하다. 블랙록이 지난달 15일(현지시각) 처음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내용 불충분과 정보 부족 등을 이유로 상장을 불허했다. 이후 블랙록은 지난 3일 자료를 보완해 재신청한 상태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가 규제의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미 증권거래위원회는 두 거래소를 미등록 증권인 가상자산을 판매했다는 혐의로 제소하며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코인베이스는 블랙록이 신청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의 감시공유협정사다.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 승인이 나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제도권 진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인다. 현물 상장지수펀드 승인도 시간문제일 수 있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특정 통화에 기반을 두지 않은 명확한 국제적인 자산”이라며 “비트코인이 금융 시스템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암호화폐를 돈세탁의 대표적인 수단”이라고 비판했던 입장에서 180도 달라진 발언이다.
암호화폐 ‘리플’ 발행사인 ‘리플랩스’가 최근 증권성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 증권거래위원회는 리플이 불법 증권이라고 판단해 리플랩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미국 뉴욕지방법원은 일반 판매자에게 판매된 리플이 증권성을 띠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는 미 증권거래위원회가 제기한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졌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규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제도권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