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구 주안역 앞에 걸린 정당 펼침막들. 인천시 제공
김진화 | 연쇄창업가
이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투자 매체 ‘삼프로 티브이(TV)’의 첫 방송에 출연한 인연이 있다. 당시 함께 출연했던 다른 게스트가 최근 그 방송을 다시 듣게 됐다며 안부를 전해왔다. 그는 5년 전 방송에서 나눈 얘기들이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대부분 맞아떨어졌다며 신기해했다. 때는 코인 광풍의 정점을 지나던 2018년 초였는데, “비트코인은 (통상적인 의미의) 화폐가 되지 않을 거고 될 필요도 없다” “달러 패권에 맞설 일도 없고 그와 무관하게 자기 영역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커피숍에서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식으로 쓰이진 않을 거다” 등의 전망과 분석이었다. 그때를 회상하니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거봐, 내 말이 맞았지” 같은 의기양양함과는 거리가 먼, 섣부른 예측이 아니어서 다행이고, 적어도 그로 인해 누군가에게 피해 내지는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거라는 안도감.
한편으론 전문가로서 공적인 발언을 한다는 것의 무게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꽤 묵직하게 남아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당시 하루가 멀다고 이런저런 토론회며 인터뷰에 불려 다니며 많은 얘기를 쏟아낼 수밖에 없었는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내 딴에는 중심을 지키려 안간힘을 썼다. 그럼에도 막상 논쟁에 뛰어들면 상대를 이기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다소 과한 주장도 늘어놓게 되기 십상이다. 사람들, 특히나 내 편을 들어줄 만한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해야 한다는 유혹은 정말이지 뿌리치기 쉽지 않다. 그때 만약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화끈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뒷골이 서늘해진다.
얼마 전 공영방송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들으며 예전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탐사기자 출신의 유명 방송인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논쟁을 주제로 한 대학 원자력공학과 교수가 출연해 진행자와 문답으로 얘기를 풀어갔다. 교수는 과학적 사실을 중심으로 진행자의 질문에 차분히 답변을 이어갔다. 문제는 진행자였다. 오염수 방류가 별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답변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마치 추궁하듯이 공격적인 질문을 이어갔다. 말꼬리 잡기는 기본이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 말 그대로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는 식의 전형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었다.
온라인에서 흔히 통용되는 표현 중 “반박 시 님 말이 맞음”이라는 문장이 있다. 대략 ‘나는 내 생각을 적었지만, 당신이 반박할 경우 당신 말이 맞는다고 치고 그냥 넘어가자’ 정도의 의미다. 언뜻 보면 반박하려는 상대방을 바보 취급하며 반박을 원천봉쇄하려는 고집불통 표현 같지만, 논쟁 과잉으로 불타오르기 마련인 토론 문화까지 생각하면 나름 현명한 대처 방식처럼 보일 때도 있다. 뜨거운 주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싶을 뿐인데, ‘답정너’를 시전하며 죽자 살자 달려들어 꼬투리를 잡아대는 키보드 워리어들이 무서워 입을 닫는 대신 그래도 자기 견해를 ‘용기 있게’ 표출한 셈이니 말이다.
길을 걷다 보면 각 정당이 내건 펼침막들로 시야가 어지럽다. 하나같이 일방적인 주장들뿐이다. 최소한의 근거조차 생략한 과격한 문구들엔 “반박 시 님 말 맞음” 같은 여유조차 부재한다. 전임 정권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면서 전 정권 비판으로만 ‘열일’을 갈음하겠다는 식의 대통령실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귀담아듣고 적임자를 기용하기는커녕 얼마 안 되는 인재풀마저 네편 내편으로 가르는 태도는 전임자들과 판박이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마음 터놓고 발언할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열린 사회도 선진 사회도 요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