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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양희은의 어떤 날] 나홀로 여행을 떠났다

등록 2023-07-02 19:18수정 2023-07-03 02:35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양희은 | 가수

지난달 말께 김진애의 <여행의 시간> 북토크에 못갔다. 거침없는 입담이 그리웠는데…. 곧 출간될 내 책 <그럴 수 있어>를 거듭 교정하면서 활자 멀미? 증세가 생겼다. 책상에 한 자세로 오래 앉아있는 바람에 고3 학생들에게 흔하다는 허벅지 뒤에서 무릎, 종아리까지 당기고 아파서 걷기도 힘들었다. 가끔 앉은 채로 천장을 올려보면 뒷목이 뻐지근하다. 아직도 모든 얘기는 1㎜짜리 볼펜 끝에서 풀려나온다고 믿는다.

내 몫의 일을 마치고 나홀로 여행을 떠났다. 가끔씩 묵언수행 겸 나만의 동굴찾기, 걷기 겸해서였다. 온천과 맛난 아침밥에 맞춰서 숙소를 정했는데 전철역에서 얼핏 듣자니 누군가의 공연으로 시내 중심가의 거의 모든 숙소는 동이 났고, 가격도 엄청 뛰었단다. 길 건너편에서 신나는 웃음소리가 들려서 보면 역시 우리의 20, 30대 젊은이들이다. 그냥 서울 어느 동네 같다. 삼선 슬리퍼에 반팔 반바지 차림, 편의점에서 집어드는 삼각김밥, 컵라면, 달걀 샌드위치, 맥주, 음료, 푸딩 등도 어김없이 비슷하다. 나도 삼각김밥과 물을 사서 숙소에서 편안하게 먹고 소화시킨 뒤 온천을 했다. 여탕엔 비밀번호가 있어서 비번을 눌러야 문이 열린다. 초저녁이라 아무도 없다. 깨끗하고 안락한 기척 없는 공간에서 혼자 즐기는 사치라니…. 오후 목욕엔 아이스케키가, 오전에는 요구르트가 공짜인데 옆의 오전용 냉장고는 잠겨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이 동네엔 유명 가게도 비어 있고 셔터까지 내려져서 낯선 느낌이다.

이튿날엔 시내 번화가로 나갔다. 역시나 네바퀴 트렁크로 이동하는 숱한 사람들, 백화점 지하식품부에 내려가 진열대를 감상했다. 서양식 제과제빵, 다른 한편에서는 전통의 맛이 이어지고 타르트 위에 장식한 작은 과일들이 예쁘다. 슈퍼에도 들어갔다. 채소 진열이 푸짐하고 싱그럽다. 그냥 본다. 아니 우리나라에도 다 있는데 뭘 여기까지 와서? 하겠지만 백화점 구경은 일 년 가야 한 번도 못한다. 장보기 동선은 뻔해서 가까운 마트나 로컬푸드에서 후다닥 반찬거리를 사고 만다. 느긋하게 구경할 수가 없다. 다리가 아파 통로 이음새에 앉아 잠시 쉰다. 나보다 윗분들인데 의지가지없이 휜 허리, 고장 난 다리로 천천히 지나간다. 다들 그렇게 혼자다. 에코백이나 네바퀴 달린 장보기용 카트를 밀고 간다. 가끔 나이 든 부부도 보인다. 사람 구경 재미있다.

점심은 튀김으로 정했다(현지인들의 맛집). 1시간15분 줄 서서 겨우 들어갔는데 밥, 소금으로 양념한 오징어젓갈, 된장국이 전부였는데 된장국 맛이 깊다. 튀김용 스테인리스 사각 식기 위에 딱 맞는 밧드망(튀김망)을 놓고 하나씩 하나씩 순서 맞춰 튀김을 내니 깨물 때 아사삭 소리가 좋아 이 집 인기비결을 알겠다. 후식으로는 370년 된 집에서 차가운 마메칸(찹쌀 옹심이+한천+설탕에 절인 갖가지콩+흑당 시럽)을 먹는데, 비닐 칸막이 바로 앞의 분이 “저도 일산 살아요. 전 일정 맞추기 힘들어서 혼자 훌쩍 떠나요.” 어지간히 말이 고팠나 보다. 침묵이 잠시 깨진 뒤, 부탁한 추천사가 도착했음을 확인했다.

‘노래란 무엇일까? 나는 잘살고 있는 걸까?’ 선배란 칠흑 같은 어둠 속 앞선 저 어딘가에서 “괜찮아, 이쪽으로 와.”라고 이야기해주는 존재라고 들었다. 그쪽을 향하며 넘어지고 나뒹굴며 길을 찾아야 하는 건 내 몫이지만 저편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올곧고 선명하고 순수하고 따뜻하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나쁜 놈들. 이리와, 올 수 있어!”하고 말을 건넨다. 입발림이 아닌 진짜 위로가 얻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성시경(가수)

“노래도, 사람도, 나무도 세월을 이겨낼 든든한 골격이 없으면 금세 시선을 돌리게 된다.” 이 말은 그녀의 노래에서도, 인생에서도, 이번에 쓴 책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 책은 오랜 세월 비바람 풍상을 잘 이겨낸, 허나 아직도 해마다 연두 빛깔 새순을 피워내는 그녀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무명시절 통기타 가수의 풋풋함과 약병을 달고 사는 노년까지도 넉넉하게 품고 솔직하게 풀어내는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청춘도 아름답게 다가오지만 나이 듦 또한 그다지 두렵지 않아진다. 그럴 수 있지, 싶다.―서명숙(작가, ㈔제주올레 이사장)

아이구- 황송한 추천사다. 고맙다.

내일이면 집에 간다. 멘탈 관리는 멘탈로 하는 게 아니라 체력으로 하는 거라는데 진이 빠져서인지 일으켜 세워지질 않는다. 글쓰기도, 말하기도, 노래도 결국엔 다 체력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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