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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바그너그룹…음악가 ‘바그너’가 왜 거기서 나와?

등록 2023-07-02 14:03수정 2023-07-03 02:38

바그너그룹과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 김재욱 화백
바그너그룹과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 김재욱 화백

하루 만에 끝난 러시아 용병 집단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은 블라디미르 푸틴에겐 악몽이었겠지만, 그를 싫어하는 이들에겐 ‘반가운’ 뉴스였다. 물론 바그너그룹은 전혀 반갑지 않은 집단이다. 2014년 크림반도 침공을 시작으로 시리아와 모잠비크, 리비아, 말리 등 여러 내전에 참가해 민간인 학살과 고문 등 ‘더러운 일’로 악명을 떨쳤다. 하지만 바그너그룹 ‘이름’의 원소유주는 그런 일과는 무관한 인물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바그너’는 우리가 익히 아는 독일 출신의 세계적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다.

서양 음악사에서 바그너는 바흐나 베토벤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진 음악가로 꼽힌다. 그는 20년에 걸쳐 완성한 4부작 <니벨룽의 반지>를 비롯해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장인가수> <로엔그린> <탄호이저> 같은 빛나는 작품으로 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바그너는 전통 오페라를 혁신해 음악과 연극이 긴밀하게 결합된 ‘악극’으로 재탄생시켰다. 특히 1859년에 작곡한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이전까지 들을 수 없었던 반음계의 불협화음을 활용한 파격적인 선율을 선보여 현대음악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품은 서양 음악사에서 혁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당대 예술은 물론 철학, 문학 등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구스타프 말러와 아널드 쇤베르크 등 음악가뿐 아니라 쇼펜하우어와 니체, 토마스 만 등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바그너가 히틀러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그에겐 불행이었다. 히틀러는 바그너를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추앙했다. 실제로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바그너는 나치의 선전 도구로 손색이 없었다. 바그너가 히틀러의 존경을 받는 음악가였다는 사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를 정치적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였고, 네오 나치와 같은 극우 세력에 영감을 준 예술가라는 불명예를 안기기도 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함께 바그너그룹을 만든 러시아 군부 출신 드미트리 웃킨도 바그너의 열렬한 추종자다. 웃킨은 네오나치이자 푸틴의 측근이다. 바그너그룹의 이름은 그가 주도해 지었다고 한다. 민간인을 상대로 인권 침해를 일삼는 용병 집단이 예술가의 이름으로 ‘더러운 일’을 세탁하고 싶었던 걸까. 예술은 예술일 때 아름다울 뿐이다. 예술가의 이름으로 인류에 대한 범죄까지 세탁할 수는 없다.

이춘재 논설위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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