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형 출입구 위에 장식으로 남은 키스톤, 20세기 초 파리. 임우진 제공
[크리틱]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보이지 않는 도시> 저자
목재를 주로 사용한 동양과 달리, 서양은 전통적으로 돌을 쌓아 건물을 지어왔다. 돌이나 벽돌을 지면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려 벽을 만드는 건축술을 조적식이라 한다. 이 조적식 공법에서는 문이나 창문 같은 개구부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빈 공간 위로 돌을 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을 개구부 상부에 반원 모양으로 쌓아 올린 아치라는 시공법이 발명되면서 건축은 크게 발전한다.
아치는 모든 굄돌이 가운데로 기울어지고 서로 기대면서 안정화되는 원리다. 이 아치의 정중앙에 자리한 키스톤은 좌우에서 기울어지는 돌과 상부 돌들의 무게까지 혼자 견뎌야 하는 핵심적인 부재다. 구조적으로 가장 중요해 단단한 돌이 필요했고, 제일 마지막에 놓는 부재니 특별한 장식으로 의미를 더했다. 그렇게 수천년이 흘렀다.
근대 들어 콘크리트로 건물을 짓게 되면서 조적식 구조의 산물, 아치가 더는 필요 없게 된다. 콘크리트와 철골로 폭이 넓고 큰 사각형 개구부를 쉽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치가 그 효용가치를 다하니 키스톤도 함께 사라질 운명이었지만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다. 오랜 기간 돌로 지은 건물의 문과 창문 위에 항상 보였던 키스톤이 새로운 재료로 지어지는 건물에서는 보이지 않자 사람들이 불편해하기 시작한다. 예전 건물에 비해 뭔가 가볍고 중후함이 결여된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이런 소비자의 불만은 집을 지어 팔아야 했던 주택개발업자에게는 생존의 문제였기에 건축가들에게 창문 위에 키스톤을 추가해 달라고 요청한다. 키스톤이 사라진 이유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래야 집이 비싸게 팔렸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아무 필요 없는 키스톤이 사각형 창문 위에 장식으로 새겨졌고, 사람들은 고풍스러운 인상을 주는 장식에 만족하며 더 비싼 집값을 지불했다. 형식과 사용은 서로 어긋났지만, 그 간극은 취향이라는 이름의 익숙함으로 상쇄됐다.
한국인에게 안방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은 단순히 잠을 자는 침실만을 뜻하지 않는다. 전통 가옥에서 안방은 내방(內房) 또는 안채라 해서 안주인을 위한 공간을 의미했다. 그래서 안방은 집의 가장 폐쇄적이고 신성한 방으로 여겨졌고 대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자리 잡았다. 밥상이 들어오면 식당으로, 이불보를 갈아 끼우는 날에는 작업장으로, 겨울에는 가족들이 화로에 모여 앉아 군밤을 나눠 먹는 가족실로, 이불을 펴면 침실로 바뀌는 등, 실제로 그 쓰임새도 가장 컸다. 안방은 한국인의 인식 속에 가족과 가장 가까운 의미의 공간이었다. 안방 아랫목에서 한이불 덮고 가족끼리 온기를 나눈 기억을 무의식에 내재한 아이들은, 집에서 안방은 가장 크고 중요한 곳이란 사실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한다. 그러니 아파트가 처음 소개됐을 때 안방이 거실과 함께 가장 좋은 향에 넓은 면적으로 자리 잡은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당시의 아이들은 오늘날 고층 아파트의 집주인이 됐다.
형식과 내용이 어긋나는 문화적 지체 현상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예전 안방과 거실을 아파트의 한정된 남쪽에 배치하기 위해 부엌과 식당은 안방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으로 보내야 했고, 가족들은 거실에 모여 텔레비전을 본다. 이제 안방은 예전 가족실의 역할은 상실한 채 그야말로 밤에 잠만 자는 수면실로 바뀌었다. ‘예전에 그랬으니’ 지금도 별 이유 없이 넓은 면적만 유지한 채, 낮에는 침대와 장롱만 따뜻한 남향 빛을 누릴 뿐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기묘한 공간이 됐지만, 오늘날 안방은 우리 자신도 이유를 모르는 모태 관념 덕에 기이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키스톤 장식은 취향이라는 핑계라도 가능했지만, 잠만 자는 침실로 전락한 오늘의 안방에게는 어떤 변호를 해줘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