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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야근

등록 2023-06-25 18:46수정 2023-06-26 02:37

‘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상면이 먼저 읽고 그리다.
‘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상면이 먼저 읽고 그리다.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야근’은 힘들다. 지금 내가 하고 있어서 안다. 어느 날 팬이 오늘도 야근 중인데 위로받을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요즘 너무 지친다고, 불안하다고, 끝이 보이질 않는다고. 분명 세상은 예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졌는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불안해 하고 우울해 할까? 다 같이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잘 살면 안 되는 걸까? 이런 꿈같은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풀어놓은 책이 있다.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1935)이다.

러셀 형님은 행복해지려면 게을러지라고 말한다. 어렸을 적 이 말을 아버지한테 했다면 등짝 스매싱이 날아왔을 것이다. 하긴 나조차도 게으름을 죄악처럼 느꼈다. 지금도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고 보람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느 정도까지 열심히 해야 하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러셀은 ‘세상에는 너무나 일이 많으며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에서 엄청난 해악이 발생한다’라고 한다. 사회를 현명하게 조직해서 아주 적정량만 생산하고 하루 4시간씩만 일한다면 모두에게 충분한 일자리가 생겨나고 실업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현시점 대한민국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4시간 일해서 일상을 영위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도 한번쯤 하루에 4시간만 일하고 여가를 즐긴다고 상상하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오늘 충실하게 살았으면, 모두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더는 불안하다고,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모두가 너무 열정적으로 살다 보니 세상이 과열됐을 뿐이라고, 퇴근했으면 괜찮다고 위로의 말씀을 건네고 싶다.

혁명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세상을 급진적으로 바꾸는 것은 무척이나 고단하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바꿀 수 있다. 다들 아는 얘기겠지만 불행은 남들 시선을 의식하고 비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갈수록 세분화되고 분업화돼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고 얽혀 돌아간다. 사회구성원이라는 톱니바퀴가 되는 것이 꼭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퇴근하고 나서는 톱니바퀴가 된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생각해 보자.

톱니로 뒷마당을 갈아서 작은 텃밭을 가꿀 수도, 할머니의 가려운 등을 긁어 줄 수도, 크기가 다른 친구 톱니들과 모여서 두드리는 악기가 되어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수도 있겠다. 내일의 공장을 돌리기 위해 톱니를 더 날카롭게 갈 수도 있겠지만, 공장의 부속품인 톱니로만 끝나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다. 내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톱니가 되기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관점을 바꾸면 한결 쉬워진다. 먼저 비교에서 오는 우월감, 열패감을 내려놓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과시적인 소비가 줄어들 테고, 그러면 소비를 위해 돈 버는 근로시간 일부가 여가시간으로 바뀔 것이다. 여가야말로 고급 수제 디저트보다 더 부드럽고 달콤하다. 시간만 있다면 공짜로 즐길 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 지난 일요일 동네 도서관에 다녀왔는데, 다양한 책들을 읽을 수 있을뿐더러 강연 등 다양한 체험 행사도 많았다. 치안이 좋아 밤 산책하기도 좋고, 우리나라는 국토 70%가 산악지대라지 않는가? 등산도 좋고 자전거 길도 잘 닦여 있다.

요즘 든 생각인데, 공부도 시험으로 평가받고 순위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면 놀이처럼 재미있을 것 같다. 크로스핏 운동을 해보니 고등학교 때 기합받는 것, 군대에서 유격훈련하는 것이랑 다를 게 없었다. 자발적으로 팀원들과 서로 응원하고 북돋우면서 하니 재미있었다. 어떤 일이든 주체적으로 재미있는 요소를 발견하면 놀이가 될 수 있다.

러셀 형님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배부른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100% 공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았다면 당당하게 쉬어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는다. 쉬면서 여기저기 주렁주렁 열려있는 여가라는 열매를 따 먹자.

사람들은 은연중에 노동만이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리 삶은 그 자체로 신성하다. 여가, 휴식 그리고 음악과 춤은 삶에 꼭 필요하다.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는 동안 같은 리듬을 타며 조화롭게 어울리고 화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팬분께서 부탁했던 ‘야근’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정말 일이 바빠서 야근할 수밖에 없더라도, 노래에서만큼은 ‘퇴근’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다. 모두 스스로를 억압하지 마시길. ‘지나간 일들 바람처럼 놓아주세요.’(크라잉넛 ‘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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