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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 대선 후보 예비경선에도 나선 흑인 노예제 폐지론자

등록 2023-06-22 19:13수정 2023-06-23 02:39

[나는 역사다] 프레더릭 더글러스(1818~1895)

“노예제도는 노예뿐 아니라 노예 소유주도 망가뜨린다”고, 미국 남부 흑인 노예로 태어난 이 사람은 말했다. 19세기 초 미국에서 노예는 임대와 양도가 가능한 재산이었기에 이 집 저 집을 팔려 다녔다. 채찍에 맞아 피부엔 흉이 졌고 널판에 맞아 머리에서는 피를 흘렸다. “가장 끔찍한 주인은 신앙심 깊은 주인이었다.” 이들이 특히 잔인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글자를 배우며 희망을 얻었다. 여자 주인이 글자 읽는 법을 가르치려 들자 남자 주인이 “배움은 노예를 망친다”며 뜯어말렸다. “그때 나는 흑인을 노예화하는 백인의 권력을 이해했다.” 그래서 주인 몰래 읽기와 쓰기를 익혔다. 나중에는 백인 눈을 피해 다른 노예들에게 글자를 가르쳤다.

1836년 동료들을 데리고 농장을 탈출하려 했으나, 노예 하나가 주인에게 밀고했다. 농장주는 이 사람을 옛 주인 휴 올드에게 반환했고, 올드는 이 사람을 배 만드는 공장에 임대했다. 공장에서 받은 임금은 올드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1838년에야 탈출에 성공한다. 미국 북부에 가서 얻은 새 이름이 프레더릭 더글러스였다.

노예제 폐지론자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을 세상에 알리겠다며 1845년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인생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책은 금세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도망 노예임이 드러나 체포될 수 있었다. 결국 친구들의 도움으로 더글러스는 노예 추적자의 손길이 못 미치는 아일랜드로 떠났다. 영국 친구들이 돈을 모아준 덕분에 올드에게 몸값을 치를 수 있었고 더글러스는 자유의 몸이 돼 미국으로 돌아온다.

1848년 미국 뉴욕주 세니커폴스에서 열린 세계 최초 여성인권회의에 참석했다. “노예제로부터 도망쳤을 때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여성의 권리를 지지했을 때 나 자신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사자성을 뛰어넘은 연대였다. 1860년 대통령 선거 때는 공화당 후보 링컨을 지지했다. 남북전쟁 때 링컨과 두차례 회담했다. 1888년 6월23일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더글러스는 예비후보로 나섰고 선거인단 선거에서 한표를 받았다. 대선 후보로 뽑히지는 못했지만 미국 흑인 정치참여 역사에서 의미 있는 한걸음이었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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