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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작은 것이 아름답다

등록 2023-06-15 19:11수정 2023-06-15 21:39

‘숲과나눔’ב마르쉐’ 농부시장에서. 원혜덕 제공
‘숲과나눔’ב마르쉐’ 농부시장에서. 원혜덕 제공

[삶의 창] 원혜덕 | 평화나무농장 농부

영국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의 저작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며 구절로도 인용한다. 그는 거대주의와 물질주의를 비판했다. 모두가 자본주의와 물질적 풍요를 향하여 가고 있을 때 반기를 들며 작고 소박한 것의 가치를 내세운 이 책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며칠 전 작은 농부시장에 다녀왔다. ‘마르쉐’라는 이름의 농부시장과 ‘숲과나눔’이라는 환경재단이 손잡고 ‘먹거리의 숲’을 주제로 서울 인사동 한 건물에서 연 작은 시장이다. 사람과 대화가 있는 시장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했다는, 생산자와 소비지가 얼굴을 맞대며 서로의 삶을 돌보는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농부시장 마르쉐와 숲과 같이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서 사회적 난제의 대안 개발을 실천하는 시민활동을 지원하는 숲과나눔이 함께 연 그곳 작은 장터에서는 소농이 농사지어 가져온 농산물, 개인 요리사가 만든 음식, 수공예가가 조그만 공방에서 만들어 온 소품들을 각자에게 주어진 작은 부스에서 팔았다.

‘숲과나눔’ב마르쉐’ 농부시장의 평화나무농장 부스에서 책 판매를 하는 ‘푸른씨앗’ 출판사 직원들. 원혜덕 제공
‘숲과나눔’ב마르쉐’ 농부시장의 평화나무농장 부스에서 책 판매를 하는 ‘푸른씨앗’ 출판사 직원들. 원혜덕 제공

얼마 전 남편이 유기농법에 관한 책을 냈기에 그 책을 알리고 싶은 출판사와 우리 부부도 함께 그 농부시장에 참여했다. 우리는 농사를 짓는다. 50년 가까운 세월 유기농업을 해왔고 우리가 농사짓는 모습을 지켜본 도시의 소비자들이 회원이 되어 농장에서 나오는 물품을 직거래로 사주고 있어서 판로 걱정이 없다. 새로이, 그리고 작은 규모로 농사짓는 농부들은 판매할 곳이 마땅치 않다. 적은 양은 팔기도 어렵거니와 시장가격으로는 생산비도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 소비자들은 건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는 수단으로 좋은 농산물을 찾아 산다. 그 실천의 한 방법으로 소규모 농부시장을 찾는다. 사람들은 소풍 온 것처럼 즐거워하며 생산자와 대화를 나누며 장을 본다. 친환경으로 기른 농산물은 겉모양이나 크기가 시중 물건보다 떨어지지만 품질이 좋다는 것을 알기에 사는 것이겠지만, 같은 생산자로서 고개가 갸웃해지는 농산물도 소비자는 집어 장바구니에 담는다. 예를 들면 잎이 달린 어린 당근. 당근은 어릴 때 솎아줘야 남은 당근이 크게 자란다. 그 솎아낸 당근의 잎은 질겨서 먹기 어렵다. 말먹이로는 최고이겠으나 도시에서 말을 기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직접 먹으려고 사는 것이다. 먹는 방법을 궁리해서 어떻게든 먹을 것이다. 어쩌면 작은 당근 뿌리는 볶아서 먹지만 파랗고 하늘하늘한 잎은 꽃처럼 병에 꽂아놓는지도 모르겠다. 수확할 때가 조금 지난 듯한 것도 기꺼이 장바구니에 집어넣는다. 즐거움과 응원하는 마음이 함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르쉐 농부시장은 1주일에 한번씩 열린다. 언젠가 시장에 참여한 한 농부와 대화를 나눴는데, 이렇게 한달에 네번 농부시장이 열려 판매할 수 있으면 먹고살 수 있다고 했다. 소비자에게는 즐거움을 주는 시장이 생산자에게는 삶 자체다. 지구에 부담을 적게 주며 생산하는 농부, 요리사, 수공예가 등이 자기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농부시장은 큰일을 한다. 내가 아는 농부시장은 마르쉐 말고도 리버마켓, 얼장, 햇빛장, 두물뭍 등이 있다. 지방에도 형태는 다르지만 있다.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직장을 잃은 여러 사람이 우리 농장에 찾아와 농사를 배워 귀농했다. 그들에게는 농사일 자체도 어려웠지만 더 어려운 일은 판로를 찾는 일이었다. 그때는 우리도 직거래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결국은 도시로 되돌아갔다. 지금과 같은 농부시장이 있었다면 그들이 도시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됐을 텐데…. 곳곳에 이런 농부시장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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