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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뉴노멀-미래] 얼굴 없는 미래

등록 2023-06-11 18:49수정 2023-06-12 02:37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회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회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성원 |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아침 7시10분, 사람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서울지하철 4호선 전철에 오른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잉글랜드의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의 노래 ‘셰이프 오브 유’(Shape of you)를 선택한다. 런던의 시끌벅적한 밤거리를 쏘다니는 기분이 드는 이 노래는 요약하면 ‘당신과 나눈 수많은 대화도 좋았지만, 당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노래 제목은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너의 모습’이겠지만 나는 ‘너의 얼굴’로 해석한다. 충북대 국문학과 조항범 교수는 15세기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얼굴의 의미는 지금의 얼굴이 아니라 몸 전체를 뜻한다고 한다. 말하기 전까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로서 눈 코 입이 달린 얼굴의 표정뿐 아니라 상대의 몸도 매우 중요한 정보다. 그의 손과 손가락, 어깨와 허리선,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다리 모양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하게 한다.

얼굴에 관해 장광설을 늘어놓은 이유는 미래에도 얼굴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어서다. 모든 정책은 현재의 문제를 풀어낼 대안을 담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현재의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더 나은 미래로 가야 한다고 설득해야 정책은 일반 시민의 일상에서 실현된다. 그래서 모든 정부는 ‘미래’를 강조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시민들이 이런 ‘미래’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 미래에 얼굴이 없기 때문이다. 그 미래에 웃을 얼굴이,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해질 어깨가, 장애를 딛고 자유로워질 팔과 다리가 보이지 않아서다. 지금 고통을 받더라도 미래엔 환한 모습이 그려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그 정책을 지지할 수 없다. 새로운 미래가 있는 것처럼 아무리 힘줘 말해도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힌다. 기억할 게 없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5월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시장 원리는 글로벌 스탠더드로서 이를 무시하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재정과 관련해 “방만한 지출로 감내할 수 없는 빚을 미래세대에게 떠넘기는 것은 미래세대에 대한 약탈”이라고 비판했다. 미래가 등장하는 이 말에서 나는 미래의 구체적인 얼굴을 떠올릴 수 없다. ‘자유시장의 원리’가 지켜지는 미래에서 울고 웃을 얼굴이 누구인지, 약탈당하는 미래세대는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애매하다. 대통령이 사용한 단어는 단호했지만 정책의 대상이나 목표는 모호하다.

지난 5월7일 한-일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도 윤 대통령은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한층 더 깊어진 양국 간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본과 새로운 협력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질서를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구축할 것인지, 그래서 그 미래를 반길 얼굴들은 누구일지 잘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반대자들만 뾰족하게 드러난다. 지난 1년 정부 정책에서 시민들의 지지를 받은 것이 있다면 분명히 미래의 얼굴이 있을 것이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의 미래계획들도 마찬가지다. 온갖 미사여구를 붙이지만, 시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하는 이유는 얼굴이 없어서다. 그 미래에서 지방소멸, 기후위기, 고령화,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 세대갈등, 일자리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지만 계획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얼굴이 없다. 누구를 위한 계획인지, 누구와 함께 이 미래계획을 실천할지 모호하다.

시민들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 그 구체적 상(像)이 떠오르지 않는 모든 미래계획은 허상이다. 각자 어떤 사회적 관계를 맺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미래계획은 쓸모없다. 기억하지 못할 미래는 우리와 인연이 없는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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