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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극장 앞에서 기다릴게요

등록 2023-06-11 18:47수정 2023-06-12 02:36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한 장면. 트리플픽쳐스 제공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한 장면. 트리플픽쳐스 제공

[서울 말고] 서한나 | <사랑의 은어> 저자

비비가 부른 찰리 푸스의 노래 ‘엘에이 걸스’(LA girls)를 들으며 떠올린 것은 지난 연인도 시간도 아닌 엘에이(LA)였다. 가본 적도 없는 도시가 그려졌다. 영화 <최선의 삶>이 시작될 때 기대한 것 중 하나는 원작 소설의 배경인 대전이 스크린에 나올까 하는 것이었다.

서울에 가기 전에 서울을 알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건 내가 생각한 서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롯데월드와 그 주변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재미있는 일이었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그 롯데월드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이곳이 서울이구나 할 만한 곳을 보았다. 서울역과 청파동이었다. 거기에는 상상보다 더한 것들이 있었다. 소음과 쩐내, 빠릿빠릿한 상인과 모든 노골적인 것들.

이만희의 영화 <휴일>과 장윤현의 <접속>, 의도가 있든 없든 서울은 재현되고 기록된다. 기억할만한 기억, 감흥을 느낄만한 감흥으로 만들어진다. 서울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이들이 많아 서울은 노래와 영화가 되었다.

영화 <군산>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지금도 포스터를 보면 반갑다. 도시를 담은 영화 하나가 생기면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기억과 해석이 쏟아지고, 누군가는 그것에 기대어 내 삶을 좀 이해해보겠다는 기대를 시작한다.

일하러 갔던 군산에서 나도 무슨 생각인가를 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공터에 차를 대고 간판을 구경하며 걸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다냄새가 났다. 장사하는지 마는지 모르겠는 가겟집 사이 옷가지를 쌓아놓고 다림질하는 세탁소를 보았다. 오래된 프랜차이즈와 말 없는 사람들, 낮은 벽돌집, 대체 어디서 돌아야 할지 모르겠는 거리를 잊을 수 없다.

대전에서 계속 지내다 보면 ‘엘에이 걸스’를 따라 다음과 같은 가사를 쓸 수도 있다. 우리가 급행 2번을 타고 중리동까지 가던 때가 그리워. 넌 이안경원에서 써클렌즈를 산다고 했지. 왜 그때 에이미언니네서 피어싱을 사주지 못했나….

2022년에 발매된 노래 ‘순.애.보’의 배경 일부는 금요일 밤의 선화동이다. 뮤직비디오는 대전에서 들깨수제비를 가장 운치 있게 먹을 수 있는 식당에서 촬영됐다. 노래는 좋아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택시가 안 잡혀 밤거리를 도는 사정을 이야기하는데, 대전 시내부터 서대전네거리까지 걷게 되는 망연함에 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좋아한다. 장면이 떠오르고, 거기가 어딘지 알기 때문에. 길가에 늑대와 푸른별이라는 술집 봤어?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말았어.

얼마 전 익산에서 잡지를 만드는 이들과 인스타그램 친구가 됐다. 잡지를 만드는 이들은 잡지만 만들지 않는다. 가게를 열고 가방을 만든다. 그들은 무엇이든 잘하는 것 같아 보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교류는 없었다. 그러다 이들에게 연락이 왔다. 둘은 올해 대전으로 이주했고, 글쓰기모임을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가 궁금하고 어머니가 궁금해 어머니를 인터뷰했다는 애림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잃어버린 것을 찾은 느낌이었다. 그는 동네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인스타그램에 적었다. 산책하기, 단골가게 만들기, 동네친구 사귀기. 그는 동네 철물점에 관해 썼다. 나는 그가 철물점에 가서 건조대를 사려다 다른 것까지 사 온 이야기가 좋았다. 그것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았다.

누군가가 떠날 때 예상되는 상실은 이런 것이다. 더는 이곳을 찍고 노래할 사람이 없다는 것. 기억에 기억을 보태며 서사화하는 즐거움, 그것으로 세상에 속하는 본능적인 즐거움이 줄어드는 것. 하얀은 애림에게 양귀자의 소설 <모순>을 선물했고, 애림은 작가를 만나고 돌아왔다. 모든 것이 미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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