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참나무의 싹에서 찾은 박테리아의 란모듈린 단백질은 가벼운 희토류인 란타넘 이온(LaⅢ. 녹색 공)은 꼭 붙잡지만(위) 무거운 희토류인 디스프로슘 이온(DyⅢ. 회색 공)은 그러지 못해(아래) 둘을 분리할 수 있다. 네이처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최근 신냉전 기류가 고조되면서 러시아와 중국에 화석연료나 원료를 의존하는 나라들이 위협을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배터리나 전자제품에 꼭 있어야 하는 원료인 리튬, 코발트, 희토류를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특히 희토류는 90%를 중국에서 수입한다.
희토류는 주기율표에서 3족에 있는 원소인 스칸듐, 이트륨과 란타넘족이라고 부르는 원소 15개를 통칭해 부르는 이름이다. 희토류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땅(지각)에 희귀하게 존재하는 원소’이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희토류 원소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양보다 훨씬 많이 지각에 존재하지만 몇몇 지역을 빼곤 농도가 낮아 상업성이 없을 뿐이다. 바다에 리튬이 엄청나게 녹아 있지만 농축하려면 돈이 너무 들어 포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지구촌 곳곳에 상업성 있는 광산이 꽤 있지만,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희토류 원소들은 물리화학적 성질이 서로 너무 비슷해 분리하기 어렵고 복잡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고 독성물질이 쓰인다. 중국이 세계 희토류 공급을 쥐고 있는 것도 광산이 몰려 있어서가 아니라 분리 설비가 있고 불가피한 환경오염을 용인하기 때문이다. 희토류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면 손에 때를 묻혀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에는 희토류 분리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오염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소개한 논문이 실렸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화학자와 생물학자들은 특정 박테리아에서 발견한 생체 고분자인 란모듈린 단백질로 가벼운 희토류와 무거운 희토류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희토류는 밀도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뉜다.
박테리아 단백질로 희토류를 분리한다는 아이디어는 10년 전 우연한 발견에서 나왔다. 메탄올처럼 탄소 하나짜리 분자를 먹는 박테리아 가운데 희토류를 필요로 하는 종류가 있었던 것이다. 이전까지는 희토류를 이용하는 생물은 없다고 생각했다. 연구 결과 이 박테리아에 있는 란모듈린 단백질이 다른 금속 원소보다 희토류 원소를 1억배나 더 선호했다. 희토류 광산에서 추출한 금속 혼합물을 란모듈린 단백질이 들어 있는 필터에 통과시키면 희토류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 뒤 연구자들은 다른 박테리아에 있는 란모듈린 단백질을 조사했고 유럽 참나무의 싹에서 채집한 박테리아의 란모듈린이 희토류도 구분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예를 들어 가벼운 희토류 원소인 네오디뮴이 95%이고 무거운 희토류 원소인 디스프로슘이 5%인 혼합물을 란모듈린으로 처리하면 네오디뮴은 99.8%, 디스프로슘은 83% 순도로 분리할 수 있다. 기존 유기 용매를 쓰는 분리법으로 여러차례 반복해야 얻을 수 있는 결과다.
희토류의 생물적 분리 방법을 기존 물리화학적 방법에 도입하면 에너지와 환경오염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 자연에는 무척 다양한 박테리아가 있어 희토류 원소들을 더 세분할 수 있는 단백질을 찾는다면 기존 방법을 완전히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희토류가 더는 전략 자원이 아닌 흔한 원소가 되는 날을 기다린다.